상대방의 명확한 동의가 없는 상태에서 이뤄진 성적 행위는 업무상 위력에 위한 성추행에 해당한다는 판결이 나왔다.
안희정 전 충청남도 지사의 성폭행 혐의 사건을 담당한 재판부가 '명시적 동의가 없는 성관계에 대한 처벌 여부는 입법·정책적 문제'라며 무죄 판결을 한 이후 나온 판결이어서 주목을 받고 있다.
수원지법 평택지원 형사4단독 이승훈 판사는 29일 업무상 위력 등에 의한 추행 등 혐의로 기소된 조기흥 평택대학교 전 명예총장(86)에게 징역 8개월에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 40시간 이수를 선고하고 법정구속했다.
조 전 총장은 2016년 10월과 11월 2차례에 걸쳐 서울 종로구 평택대 법인 사무국 건물 내 자신의 사무실에서 여직원 A씨를 추행한 혐의로 지난해 11월 불구속기소 됐다. 앞서 A씨는 평택대에서 근무한 1991년 11월부터 20여년간 조 전 총장으로부터 성폭행과 성추행을 당했다며 2016년 말 조 전 총장을 고소했다.
경찰은 공소시효가 지난 혐의를 제외하고 나머지 혐의에 대해서만 조씨를 조사해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검찰은 이 중 범행 날짜와 장소 등이 특정돼 재판에서 혐의 입증이 가능하다고 판단한 2건의 혐의에 대해서만 기소했다.
이 판사는 "당시 피고인은 피해자의 인사에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던 점에 비춰 피해자의 자유의사를 제압할 정도의 세력을 갖고 있었고, 그런 상황에서 피고인은 피해자의 명시적인 동의 없이 추행해 업무상 위력에 의한 추행죄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시했다.
이 판사는 또 "이번 사건 피해자는 피해 사실에 대해 대체로 일관되게 진술하고 있으며, 두 번째 추행을 당한 뒤 다른 사람에게 밝은 표정으로 피고인을 칭찬한 사실이 있지만, 이는 일자리를 잃을 수 있는 두려움과 고통을 떨치기 위해 정상적 사회생활을 영위하는 데 더욱 애쓴 것으로 볼 수 있어 피해자 진술은 신빙성이 있다고 판단된다"고 밝혔다. 이 판사는 유죄 판단에 앞서 "법원이 성희롱 관련 소송의 심리를 할 때는 그 사건이 발생한 맥락에서 성차별 문제를 이해하고 양성평등을 실현할 수 있도록 '성인지 감수성'을 잃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이번 판결은 이 사건과 유사한 안 전 지사의 성폭행 혐의 사건이 무죄를 받은 뒤 나온 것이어서 더욱 관심을 모으고 있다. 당시 안 전 지사 재판부는 "마음 속으로 (성관계에) 반대하더라도 현재 우리나라 성폭력 처벌 체계에서는 피고인의 행위가 처벌 대상이 되는 성폭력 범죄라 볼 수 없다"면서 "상대방의 명시적 동의가 없는 성관계를 처벌할
그러나 현행법에 나온 '위력'을 넓게 해석하면 안 전 지사 사건도 유죄로 인정될 수 있어 이를 입법적 문제로만 볼 수 없다는 반론이 있었다. 이날 조 전 총장에 대한 유죄 판결도 위력을 폭넓게 해석한 판결로 해석되고 있다.
[평택 = 지홍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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