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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육사의 지시에 맞춰 코끼리가 육중한 발을 스스로 철봉 위에 걸친다. 사육사가 니퍼를 가지고 코끼리의 발을 깨끗하게 씻겨준 뒤 발톱을 정리해준다. 코끼리는 익숙한 듯 다른 발도 내밀어 발톱 정리를 부탁했다.
몸무게만 3~5t에 달하는 코끼리의 다리를 마술처럼 움직인 이는 바로 고슬기(32) 사육사다. 올해로 입사 6년 차를 맞은 고 사육사를 지난 14일 경기도 과천시 서울대공원에서 만나 직업에 대한 고충과 보람을 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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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로 입사 6년 차를 맞은 고 사육사를 지난 14일 경기도 과천시 서울대공원에서 만나 사육사로서의 고충과 보람을 들어봤다. 사진은 아시아코끼리 사쿠라(53)와 고슬기 사육사(32) [사진=김제이 기자] |
2013년 봄에 서울대공원에 입사하면서 정식 사육사가 된 그는 인턴 등의 경력을 합하면 10년의 경력을 가진 베테랑이다. 대학에서 애완동물 관리학을 전공했다는 고 사육사는 "2008년 제대 후 2년 동안은 평일을 학교에 나가 공부를 하고 주말엔 동물원에 나가 사육사 실습을 했다"며 "서울대공원에 정식 입사하기 전까지 몇 년 간은 사육사로 실전 경험을 쌓는 시간을 보냈다"고 소개했다.
사육사가 되기 위해서 최소 축산학과나 애완동물 관리학과 등 관련 학과를 졸업해야 동물원에 입사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 동물 관련 봉사활동이나 인턴십 등을 경험하는 것도 사육사가 되는 데 도움이 된다. 별도의 자격시험이 필요한 건 아니지만 축산기사, 축산 산업기사, 애견미용 자격증 등의 관련 자격증을 소지하면 입사 시 가산점이 부여된다고 고 사육사는 설명했다.
고 사육사의 하루는 남들보다 일찍 시작된다. 오전 7시에 동물원에 출근해 관람객들이 동물과 만나는 방사장을 정비하고 내실도 깨끗하게 치운다. 청소 뒤에는 담당 동물들에게 아침 식사를 준다. 사육사라고 하면 동물들에게 밥을 주고 배설물을 치우는 게 주요 업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본격적인 업무는 이제부터 시작된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사육사의 하루가 동물들의 배설물을 치우고 먹이를 챙겨주는 걸로 시작되고 끝나긴 하지만 일과 대부분은 청소와 배식을 끝내고 사육사복을 입고부터가 진짜 업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관람객들에게 동물들을 소개해주고 습성 등을 설명하거나 초중고생 등을 대상으로 강의를 할 때도 있습니다. 때로는 교육프로그램을 짜서 동물관 투어도 합니다. 사육사는 '동물 애호가'로서 그저 동물을 돌봐주는 역할을 넘어 사람들과 동물을 연결해주는 '동물 전문가'가 돼야 합니다."
코끼리 발톱 관리도 전문 직업인으로서 사육사들이 이뤄낸 결과다. 야생 코끼리는 한 지역에 오래 머물지 않고 무리 이동을 한다. 반면 동물원 속 코끼리들은 콘크리트 바닥에서 생활해 발 상태가 좋지 않고 운동 부족으로 관절염을 앓는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발톱 손질은 동물원 코끼리에게는 꼭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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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슬기 서울대공원 사육사가 방사장에서 '긍정적 행동강화 훈련'을 통해 코끼리의 앞발톱을 정리해주고 있다. [사진제공:서울대공원] |
서울대공원 사육사들은 발톱 관리로 인한 코끼리의 스트레스 감소와 사육사들의 안전을 위해 지난 2013년 11월부터 '긍정적 강화 훈련'을 도입했다. 먹이, 칭찬, 쓰다듬기 놀이 등 긍정적인 도구 및 행동을 활용해 동물들의 행동을 유도하는 훈련방식이다.
고 사육사는 "코끼리 발이 생각보다 연약해서 돌이나 작은 이물질에도 쉽게 상처가 나는 경우가 있어서 상처를 예방해주는 차원에서 발톱 관리가 꼭 필요한데 긍정적 강화 훈련을 통해서 코끼리가 스트레스 받지않고 발 건강을 유지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서울대공원 대동물관에는 아시아코끼리, 흰코뿔소 아메리카들소, 아프리카물소, 아시아물소, 큰뿔소 등 수십 마리의 대형 동물들이 살고 있는데, 긍정적 강화 훈련을 통해 동물들의 몸 상태를 더욱 꼼꼼하게 안전하게 살피는 게 가능해졌다.
긍정적 강화 훈련 외에도 고 사육사는 행동풍부화 훈련을 통해 코끼리들의 더위를 식혀주기도 한다. 그는 "양동이에 물과 과일을 얼려 과일얼음을 먹이거나 폰드(큰 수영장)를 조성해두면 코끼리들이 스스로 수영하며 체온을 조절한다"면서도 "너무 더우면 내실에 입사해 여름을 난다"고 알려줬다.
이어 "추위에 약한 코끼리들은 겨울철 온도가 영상 5도 이하로 내려가면 야외로 방사하지 않고 실내에 머무르게 한다"며 "물론 내실에만 있으면 피부가 건조해져서 오일, 글리세린 등 보습제를 꼼꼼히 발라주고 물샤워도 해주며 수분 유지에 신경을 쓰는 편으로 실내에서도 다양한 행동풍부화를 위한 조건을 마련해둔다"고 강조했다.
대동물관 사육사로서 청소 등 동물 제어에 육체적인 부담이 더 큰 편이지만 무엇보다 그를 힘들게 했던 건 사랑하는 동물들과의 이별이었다. 2010년부터 서울대공원에서 생활한 가자바(14세·수컷)가 이달 5일 갑자기 숨을 거두는 일이 발생했다. 아시아코끼리는 야생에서 50~60년, 동물원에서는 평균 19년 정도 살 수 있다. 사람 나이로 치면 한창때인 가자바의 죽음은 사육사들에겐 충격으로 다가왔다.
고 사육사는 "동물을 좋아해서 선택한 직업이기 때문에 육체적으로 힘든 건 크게 없지만 오랜 시간 가족처럼 돌봐온 동물들을 떠나보낼 때면 많이 힘들다"면서 "특히 가자바는 긍정적 강화훈련을 시작했을 때도 저를 믿고 2주 만에 따라와 준 특별했던 친구였다"라고 말하며 눈시울을 적셨다.
가자바는 수겔라(14세·암컷)와 스리랑카 정부에서 기증받은 아시아코끼리로 2년 전 수겔라 사이에서 새끼 코끼리 '희망이'를 출산했다. 가자바가 남기고 간 희망이는 엄마 수겔라와 함께 사쿠라(53), 키마(33살 추정) 등 이모, 할머니 코끼리들의 보살핌을 받으며 지내고 있었다.
동물원 관람 예절을 묻자 "요즘은 심하지는 않은데 코끼리들한테 먹이를 던져주거나 어린아이들이 코끼리 아저씨 노래를 '떼창'하는 경우도 있다"며 "먹을 것을 던져주거나 큰소리로 노래를 부르는 건 코끼리의 건강을 해칠 수 있으니 자제하는 것이 좋다"고 설명했다.
그는 동물들이 어떤 행동을 하는지 그저 지켜보기만 해도 충분한 교감이 가능하고 진흙 목욕 장면이나 코로 물을 뿜는 등 다양한 행동도 목격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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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쿠라와 고 사육사가 교감하고 있다. 코끼리는 모계 중심 사회로 하는 동물로 암컷들이 무리를 지어서 생활한다. 아기 코끼리 희망이도 엄마 수겔라뿐 아니라 사쿠라, 키마 등의 보살핌을 받고 있다. [사진=김제이 기자] |
[디지털뉴스국 김제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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