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가장 각광 받는 산책 코스 중 하나는 북촌 한옥마을 일대죠.
그런데 이 대규모 한옥단지를 만든 정세권 선생이 독립운동가였다는 사실 아셨나요?
이정호 기자가 전합니다.
【 기자 】
봄기운이 묻은 오후의 바람 속에서 시민들이 산책에 나섭니다.
지금은 초현대식 건물을 내려다보며 과거를 느끼는 곳이지만, 1920년대 북촌 한옥마을은 혁신적인 건축의 본보기장이었습니다.
북촌의 한옥엔 정통 한옥과 달리 수도가 들어왔고 주방에는 타일이 깔렸습니다.
집의 규모가 비교적 작고, 가격이 낮아 서민들도 거주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 기준에선 잘 만들어진 중소형 아파트나 오피스텔이었던 셈입니다.
서울 종로 이북인 북촌 일대 땅을 대규모로 사들여 50제곱미터에서 130제곱미터 사이의 작은 필지로 쪼개 건축사업을 벌인 이는 바로 우리나라 최초의 부동산 개발업자인 정세권 선생입니다.
마케팅 방식도 근대적이었는데, 1929년 일간지에 '집을 팝니다'라는 제목으로 집중적인 광고를 냈습니다.
이렇게 조선인이 집중 거주하는 대규모 한옥단지가 조성되면서 충무로와 명동 일대, 즉 남촌에 살던 일본인들이 거주지를 넓히려던 시도를 막을 수 있었습니다.
▶ 인터뷰 : 김경민 /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 "미국에서 주택이 대량생산돼서 팔리는 시스템은 1950년대에 나와요. 그것보다 20~30년 전에 그런 게 드러났다는 것은 어마어마한 겁니다."
정세권 선생은 독립운동의 주도세력이자 든든한 재정 후원자이기도 했습니다.
경제적 자립 운동을 주도한 조선물산장려회에서 간부로 활동하고, 1935년에는 조선어학회의 활동 근거지가 된 회관을 기증합니다.
▶ 인터뷰 : 박용규 / 고려대 한국사연구소 연구교수
- "많이 번 돈을 어디에 투여했느냐? 바로 독립운동 전선에…. 신간회 독립운동, 물산장려운동, 조선어학회 언어독립투쟁에…."
서울시는 정세권 선생의 생애를 조명하는 토론회와 전시회 등을 추진한다는 방침입니다.
MBN뉴스 이정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