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마포농수산물시장에서 식자재를 판매하는 남 모 씨(74)는 인건비 상승으로 올해 설 선물 포장을 위해 고용하는 직원을 4명에서 3명으로 줄였다. 남 씨는 "작년에 (직원 1명당)140만원 주던 것을 지금은 175만원씩 주고 있다"며 "임대료도 5% 오르고 물가도 올랐지만 물건을 덜 사올 수는 없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줄일 수 있는 것은 인건비뿐이라 한명을 덜 고용하는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서울 송파구의 한 재래시장에서 채소를 판매하는 상인 김 모 씨(54)는 "청양고추가 평소 ㎏당 6000원 하던 것이 15000원까지 올랐다"며 "작년 설을 앞두고도 8000원 정도였던 가격이 올해는 인건비 상승에 불경기, 한파까지 겹쳐 급상승했다"고 전했다. 김씨는 "월급 150만원에 가게 일을 도와주는 직원을 4명씩 고용했는데 올해는 줄일 계획"이라고 말했다.
최저임금 16.4% 인상(시간당 6470원→7530원) 직후 첫 설 연휴를 앞두고 상인들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인건비 상승에 따른 가격인상 압박으로 물건값을 올리거나 직원을 줄여 설 특수를 버텨나가는 풍경이 곳곳에서 연출되고 있다. 불경기로 가뜩이나 줄어든 손님을 의식해 인건비 상승분을 상품가격에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거나 아예 가게를 비우는 상인들도 나타나고 있다.
인건비 상승분은 원재료값에 반영되고 가공, 유통과정의 인건비가 최종 상품의 가격을 끌어올리는 악순환은 재래시장 상인들을 울상짓게 하고 있다.
서울 영등포구 중앙시장에서 건어물가게를 운영하는 한 상인은 "세금도 오르고 재료값도 수입을 해서 올랐다"며 "가격을 올리거나 양을 줄어야 되는데 양을 줄이면 인심이 없다는 평을 들어 가격을 소폭 올릴 수 밖에 없다"고 했다. 야채 상회를 운영하는 구 모 씨(65)는 평소 1만5000원에 판매해온 느타리버섯 한 박스를 3만원에 내놓고 있다. 과일상회를 운영하는 또 다른 상인은 "사람을 쓰려고 해도 인건비가 올라서 쓰지도 못한다"며 "있던 사람도 내보내야할 판"이라고 토로했다.
서울 송파구 가락동의 한 시장에서 야채를 파는 이 모씨(46)는 "대파 한단에 보통 1200~1300원 정도이고 저렴할 때는 600~700원 정도"라며 "겨울에도 많이 비싸면 2000원 정도인데 올해는 3000원까지 올랐다"고 했다. 이 씨는 "3000원은 전에 물난리 크게 났을 때 가격"이라며 "날씨가 추워서 난방비가 많이 들고 생육 자체도 잘 안되는데 최저임금 상승까지 겹쳐 더 오른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 1일 고형권 기획재정부 1차관은 1월 소비자물가지수를 두고 "안정세가 지속되고 있다"며 "외식 물가 상승세는 소폭 확대됐으나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영향은 제한적"이라고 밝힌 바 있다. 또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합동물가대책종합상황실을 운영하면서 설 명절과 평창올림픽 기간에 시장 물가를 관리하겠다"며 의지를 표출했지만 여러 악재가 겹치면서 '생활물가 잡기'엔 실패한 모양새다.
설 연휴를 이틀 앞둔 13일 서울 마포구 성산동의 마포농수산시장을 찾은 시민은 손으로 셀 수 있을 정도로 적었다. 일치감치 장사를 포기한 듯 1시간 이상 가게를 비운 상인들도 보였다. 가게를 지키는 상인들 중에는 어두운 표정으로 장부를 골똘히 살펴보는 이들도 있었다. 이날 만난 상인들은 "이대로 가다간 장사 접어야 할 판"이라며 어려움을 호소했다.
서울 송파구의 한 백화점 식품매장을 찾은 시민들도 "가격 때문에 살 물건이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주부 박모씨(41)는 "당분간 과일과 채소는 못 먹을 것 같다"며 "설 선물도 간단한 것으로 넘어가려 한다"고 말했다.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가 공시하는 농산품 도매가격에 따르면 실제 상당수의 농산품 가격이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많게는 두 배 이상 상승했다. 설 연휴 이틀 전(2017년 1월 25일·올해 2월 13일)을 기준으로 공사의 주요 농산품 공시가격을 비교한 결과 청양고추 10kg당 가격은 지난해 3만1244원에서 올해 7만4373원으로 138% 상승했다. 시금치 역시 4kg 기준 9772원에서 1만7496원으로 크게 올랐다. 감자 가격도 20kg당 3만6535원에서 6만2630원으로 70% 이상 오른 상태다.
한파에 따른 재료값 상승도 반갑지 않은 물가 인상 요인에 가세했다. 서울 영등포구의 한 슈퍼마켓에서 일하는 양모씨(55)는 "날이 추워서 야채값이 많이 올랐다"고 말했다. 손해를 감수하며 가격을 동결해도 매출은 제자리걸음이다. 청과와 건어물 등을 파는 종합상회를 운영하는 김 모씨(66)는 "가격을 올리고 싶어도 손님들이 더 떨어져 나갈까봐 못 올린다"고 말했다
[박재영 기자 / 류영욱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