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검찰개혁위원회(위원장 한인섭)가 8일 "경찰에 대한 검찰의 수사지휘권을 원칙적으로 폐지해야 한다"는 내용의 검·경 수사권 조정 권고안을 내놨다. 경찰의 수사 권한을 대폭 강화하는 내용이지만 수사는 경찰만 할 수 있도록 한 경찰개혁위원회(위원장 박재승) 권고안과는 차이가 있다. 또 경찰이 요구해 온 '수사 종결권'과 '영장 청구권'은 여전히 검찰이 갖도록 해 향후 논의 과정에 진통이 예상된다.
법무·검찰개혁위는 이날 권고안을 통해 "검사의 수사지휘를 받도록 한 형사소송법 규정을 삭제해 경찰이 수사 중인 개별 사건에 대한 검사의 '송치 전 수사지휘'를 원칙적으로 폐지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다만 △검찰에 접수된 고소·고발 수사 △경찰의 송치 사건에 대한 보완 수사 △변사 사건 수사 △경찰의 영장 신청시 보완 수사에 대해서는 검찰이 경찰에 구체적인 수사를 요구할 수 있도록 했다. 또 "경찰 수사 과정에서 사건 관련자가 경찰의 편파 수사, 과잉 수사, 지연 수사 등에 이의를 제기하는 등 공정성이 훼손됐다는 우려가 있을 때 검찰이 경찰에 사건을 송치하라고 요구하는 권한을 부여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법무·검찰개혁위는 "경찰 수사 과정에서 권한 남용이나 인권 침해를 방지하고 공정한 사건 처리가 이뤄지도록 경찰이 수사한 모든 사건을 검찰에 송치하고 검사가 사건 종결 및 기소 여부를 결정하는 현행 시스템이 바람직하다"고 봤다. 또 종전처럼 검찰이 경찰의 영장 신청을 통제할 수 있도록 했으나, 기각 사유가 부당하면 경찰이 검찰청에 설치되는 영장심의위원회를 통해 이의를 제기할 수 있게 했다.
이에 대해 박상기 법무부 장관(66)은 "위원회의 권고안을 존중해 국민을 위한 수사권 조정이 이뤄지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정부는 향후 법무부 장관, 행정안전부 장관, 검찰총장, 경찰청장이 참여해 본격적인 검경 수사권 조정안 마련에 나설 계획이다.
이날 대검찰청은 "바람직한 수사권조정 방안이 나오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지만 검찰 내부에선 "검·경 권한과 관계를 근본적으로 뒤흔드는 권고안"이라는 반응이 나왔다. 한 검찰 관계자는 "형사소송법에서 검찰의 수사'지휘'권을 삭제하면 검찰이 '요구'할 수 있도록 규정한 보완수사 등에 대해서도 경찰이 따를 의무가 없어진다"며 "경찰은 견제받지 않는 수사권한을 갖고, 부실·지연수사 등에 대한 책임은 수사 이후 기소와 재판 과정을 맡는 검찰이 지는 셈"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부패·공직자범죄 수사는 공수처가 출범해 맡게 되면 검찰은 경찰이 맡지 않는 고소·고발 사건과 경찰이 부실하게 수사해 온 사건 뒤치닥거리를 하게 될 것"이라며 "검찰 수사 총량을 줄이겠다고 했지만 오히려 사건 수가 늘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경찰 내부에서도 권고안에 대해 "터무니없다"는 반응이 많았다. 경찰 일선에서 최우선 개선 과제로 꼽는 검찰의 독점적 영장청구권에 대한 양보는 고사하고, 검찰의 수사지휘권 폐지에
한 경찰 관계자는 "수사지휘권 폐지에 예외 조항이 많은데 검찰이 주장하는 두 기관의 수평적 관계는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다"며 "권고안 단계에서부터 전혀 권력을 내려놓을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이현정 기자 / 이용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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