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미군을 상대로 기지촌에서 성매매에 종사했던 여성들에 대해 국가가 성매매를 정당화하고 방조한 책임이 있다는 항소심 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1심에서 인정한 강제 격리 수용 후 성병 치료 행위의 위법성보다 국가 책임 범위를 더 넓게 인정했다.
8일 서울고법 민사22부(부장판사 이범균)는 이모씨 등 117명이 대한민국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 항소심에서 "정부는 117명 전원에게 300만원 또는 700만원을 지급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이 사건은 기지촌 조성 및 운영·관리, 조직적·폭력적 성병 관리, '애국교육' 등을 통한 성매매 정당화, 불법행위 단속 면제 등의 위법 행위에 국가 책임이 있는지 여부가 쟁점이다. 앞서 1심은 1977년 8월 19일 이전 성병 감염자로 판명돼 강제 격리 수용 후 받은 치료 행위만 위법하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이와 관련된 54명에게만 위자료 5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성병 감염인도 격리 수용해야 한다'는 규정이 제정·시행된 시점을 기준으로 책임 소재를 구분했다.
하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국가가 불법적인 기지촌이 조성·운영되는 것을 방조했고, 이곳 여성들을 외화벌이 애국자로 치켜세우며 성매매를 하도록 한 책임도 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보건부, 용산경찰서장 등이 작성한 공문을 보면 성매매 행위 및 영업시설을 개선하는 것으로 기지촌 위안부의 성매매를 조장한 행위로 평가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어 "담당 공무원은 '다리를 꼬고 무릎을 세워 이렇게 앉아라' 등 성매매 업소 포주가 지시할 만한 사항들을 직접 교육하고 전용아파트 건립을 약속하는 등 정부가 적극적으로 성매매를 정당화·조장했다"고 덧붙였다.
또 "자발적으로 기지촌 성매매를 시작했더라도 국가가 이를
다만 국가가 불법행위 단속 예외지역으로 지정해 성매매 단속을 면제했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1심과 마찬가지로 "국가 책임을 인정하기 부족하다"고 밝혔다.
[채종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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