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인 지난 8일 오전 강원도 인제군 용대리 인공폭포 빙벽장. 빙벽용 덧신(crampons·크럼펀) 없이는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는 미끄러운 빙벽에서 중년 남성 6명이 아이스바인(빙벽을 오르내리는 데 쓰이는 낫)과 고정대, 로프와 씨름하고 있었다. 거는 즉시 얼어 양분과 맛을 유지한 채 명태를 황태로 바꿔버린다는 황태덕장의 추위와 바람에도 구슬땀이 흘러내렸다.
안명득 씨(49)를 포함한 대한적십자사 외설악 산악구조대원 25명의 일상이다. 이들은 소방청 소속 설악산 119특수구조대원이나 국립공원관리공단 구조대원 같은 공무원이 아니다. 커피숍이나 식당을 운영하는 일반인들이다. 1969년 설악산 죽음의 계곡에서 훈련하던 산악대 10명이 눈사태로 사망한 '10동지 조난사고'를 계기로 그 해 창설된 구조대는 현재 7대 대장 안명득 씨를 필두로 명맥을 이어나가고 있다.
외설악 산악구조대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산세가 깊다는 설악산에서도 험하기로 소문난 외설악 일대에서 주로 활동하고 있다. 손님의 카페라떼를 만들다가도 산악 사고가 일어났다는 소식이 스마트폰으로 전해지면 만사를 제쳐두고 덧신과 아이스바인을 챙겨 높게는 해발 1700m 조난지점으로 향한다.
"흉부 쪽을 꽉 조여주지 않으면 조금만 삐긋해도 들 것에 실린 사람이 위험해질 수 있어. 로프를 조금씩 풀면서 내려가야 우리도 안 다친다니까." 한 대원은 기자와 대화하면서도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아슬아슬한 빙벽에서 들 것을 평지로 이동시키는 훈련을 하고 있는 구조대원들의 목소리에서 특수부대의 실전훈련을 방불케 하는 긴장감이 느껴졌다.
외설악 산악구조대원은 전원 자원봉사자다. 안명득 대장은 "구조에 필요한 들 것, 크럼펀, 빙벽화, 로프 등등 모두 개인이 구입한 장비"라며 "훈련과 구조에 드는 자잘한 비용도 우리가 조달해 충당한다"고 했다. "훈련이다 구조다 해서 가족들과 보내는 시간이 부족한 것이 항상 미안하다"는 또다른 대원의 얼굴은 검게 타 있었다.
설악산 일대 산악사고가 발생하면 설악산 119특수구조대나 국립공원관리공단구조대가 이들에게 SOS를 청한다. 119특수구조대 같은 공식구조대 인력만으로 40만㎢에 달하는 설악산국립공원 전역을 관리하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25명의 산악구조대원은 하루에 4명씩 일종의 '5분 대기조'를 운영하고 여건이 되는 4~5명을 더해 8~9명이 현장에 출동한다.
공식 구조대원보다 외설악 산악구조대원들이 설악산에 익숙한 것도 이들이 필요한 이유다. 산악사고뿐 아니라 진화, 구급 업무까지 아우르는 119구조대원과 달리 산악구조에 특화된 구조대는 현장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할 뿐 아니라 119 신참 구조대원들에게 산악안전법 등을 교육하기도 한다. 안 대장은 "주로 조난 사고가 많은데 구조 요청을 한 조난객이 자기 위치조치 파악을 못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라 산에 익숙한 구조대가 등반객이 말해준 단서들을 조합해 조난당하기 쉬울만한 위치를 중점적으로 수색해서 찾는다"고 전했다.
대원들이 산악구조대 활동에 뛰어든 이유는 제각각이다. 구조대 행정 봉사직를 맡다가 구조대 열정에 반해 들어오거나 빙벽 등반대회에 참여하다가 구조대에 관심이 생겨 들어온 대원도 있다. 119구조대원으로서 구조능력을 기르기 위해 외설악 구조대원에 자원한 윤보성 씨(43)는 "119구조대원으로서 구조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됐으면 해서 비번 날에는 민간구조대원으로 활동을 하면서 배우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산을 사랑하는 마음이 구조대 활동의 출발점이라는 점은 모든 대원의 공통점이다. 2004년부터 구조 활동을 시작한 차철호 씨(41)는 구조대 활동을 제대로 하기 위해 박물관이라는 안정적인 직장을 그만두고 커피숍을 차렸다. 사무실을 지켜야 하는 박물관 직원과 구조대 활동을 병행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외설악 산악구조대원들의 소망은 자신이 좋아하는 산을 자주 찾지 않는 것이다. 등산객들의 산악안전의식 제고로 산악사고가 줄어들어야 한다는 얘기
안 대장은 "우리나라 산악인구는 폭발적으로 증가했지만 이와 걸맞은 산악안전에 대한 지식을 갖춘 사람들은 매우 부족하다"며 "산을 사랑하는 것도 좋지만 그만큼 산을 존중하는 마음을 가지고 안전에 대한 준비를 철저하게 갖춰야 좋은 산행이 될 것"이라고 당부했다.
[인제 = 류영욱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