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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트남 호찌민시의 상징과도 같은 인민위원회 청사. 식민지배 시기에 건설된 콜로니얼 양식 건물이다. 그 뒤로는 대형 쇼핑몰인 빈콤 센터가 보인다. 호찌민시는 동서고금(東西古今)을 아우르는 도시로 급성장하고 있다. [사진 = 김지혜 에디터] |
"점점 더 멀어져 간다. 머물러 있는 청춘인 줄 알았는데···"
20대 초반 중학교 친구와 길을 걷다가 어느 상점에서 故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가 흘러나왔다. 우리는 이 노래를 들으며 약속을 하나 했다. 서른이 되는 해 함께 여행을 떠나자고. 흘러간 20대를 잘 정리하고 다가온 30대를 잘 맞아보자는 뜻에서였다. 친구와 이 같은 이야기를 할 당시엔 30대가 먼 미래의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새 말로만 듣던 서른이 성큼 나를 찾아왔다.
몇 달 전 친구와 어디로 여행을 갈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우선 2018년 1월 첫째주로 일정을 잡았다. 여행지는 따뜻하면서도 거리상으로나 경제적으로 부담이 덜한 동남아 나라 중 고르기로 했다. 그러다 문득 베트남이라는 나라가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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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투자왕`이라 불리는 짐 로저스. [사진 = 짐로저스 제공] |
얼마 전 '투자왕'이라 불리는 짐 로저스가 한국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해 세계의 돈이 흘러 들어갈 곳으로 베트남을 꼽았다. 그는 베트남에 대해 "저평가돼 있지만 긍정적인 변화가 일어나는 곳"이라고 말했다. 베트남은 풍부한 노동력과 낮은 임금 덕에 글로벌 기업들이 진출하길 원하는 '0순위 나라'로 급부상했다. 때문에 내 눈으로 직접 이곳이 얼마나 발전하고 있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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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트남 현지 음식. [사진 = 김지혜 에디터] |
아울러 각종 TV예능 프로그램에서 최근 베트남의 먹거리·관광지를 자주 소개하는 것을 보고 호기심이 생겨 '서른맞이 여행지'는 베트남으로 결정했다. 베트남 최대 경제도시인 '호찌민(옛 사이공)'과 큰 모래언덕이 흡사 사막과 같은 풍경을 연출해 색다른 느낌을 자아낸다는 바닷가 마을 '무이네' 두 곳을 방문하기로 마음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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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 김지혜 에디터] |
에디터가 호찌민을 간다고 했을 때 "관광할 만한 데가 별로 없어 실망했던 곳"이라고 설명하는 주변 지인들이 꽤 많았다. 이로 인해 기대치가 낮았던 탓일까 아니면 그동안 베트남에 대해 무지했던 까닭일까. 볼 거 없고 낙후됐을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호찌민에 도착하자 깜짝 놀랐다. 생각보다 많이 발전했고 깨끗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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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콩과 싱가포르가 연상되는 호찌민시 동커이 거리. 과거 코친차이나 수도 사이공의 중심부였지만 현재는 쇼핑가로 변모했다. [사진 = 김지혜 에디터] |
도시 곳곳 조경이 잘돼 있어 이국적인 분위기가 흘러 넘쳤다. 마천루가 뻗어있는 구역이 있는가하면 낡아보이지만 나름의 특색을 가진 건물들이 모여있는 곳도 있었다. 외국 기업과 합작해 세우는 빌딩 공사현장도 많이 눈에 띄었다. 삼성과 LG, 롯데, CJ 등 국내 기업의 광고나 브랜드도 쉽게 볼 수 있었다. 고층빌딩이 많이 들어선 지역은 마치 홍콩과 싱가포르가 연상될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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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장하는 도시인 만큼 호찌민시 곳곳에는 빌딩 공사현장이 많다. 사진 뒤쪽에 높이 솟은 건물은 호찌민시의 현재를 보여주는 바이텍스코 파이낸셜 타워 & 사이공 스카이 덱. [사진 = 김지혜 에디터] |
"중국의 정치적 수도가 베이징이지만 경제 도시는 상하이듯이 베트남 수도는 하노이지만 경제와 교통의 중심은 호찌민이다."
여행을 하기 전 호찌민에 대한 정보를 찾아보던 중 발견한 혹자의 말이 이해가 갔다. '1000만명이 넘는 사람(비공식 인구까지 추산)들이 분주하고 역동적으로 움직이고 있구나'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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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통 재래시장 벤탄마켓(왼쪽)과 현대적인 쇼핑몰(오른쪽) 모습. [사진 = 김지혜 에디터] |
호찌민은 과거 프랑스가 통치하던 시절 사이공으로 불렸다. 프랑스령 인도차이나의 수도 역할을 하며 '동양의 파리'라는 별명을 얻었다. 이때 세워진 콜로니얼 양식 건축물들이 아직까지 보존돼 있어 유럽의 정취도 묻어난다. 전통을 간직한 시장·거리부터 트렌디한 레스토랑과 커피숍·바, 현대적인 쇼핑센터·호텔까지···에디터에게 호찌민은 먹어봐야 할 음식과 가봐야할 장소로 넘쳐나 어디를 우선순위로 둬야할지 고민되는 그런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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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트남 현지 맥주. [사진 = 김지혜 에디터] |
물가가 저렴해 돈 걱정을 덜하며 음식·문화를 즐길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숙박비는 게스트 하우스나 에어비앤비 숙소, 저렴한 호텔을 잡을 경우 하루 3만~5만원이면 된다. 시설·서비스가 좋은 5성급 호텔 역시 10만~20만원이라는 비교적 낮은 가격대로 묵을 수 있다. 편의점에서 물 한 병과 맥주 한 캔을 구매하니 원화로 각각 250원, 400~500원 정도였다. 맥주는 워낙 싸서 가게에서 사마셔도 용량·종류에 따라 1000~2000원에 마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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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자들로 붐비는 부이비엔 거리에는 카페와 레스토랑이 즐비해있다. [사진 = 김지혜 에디터] |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미지 역시 그 나라의 호감도에 영향을 미친다. 에디터가 느끼기에 베트남인들은 선하고 교육을 잘 받은 것 같았다. 여행자인 나와 친구에게 친절하게 대해줬고 우리나라에 관심이 많은지 한국어 단어를 말하며 반가워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많은 베트남인들이 생활 영어를 어느 정도는 할 줄 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외국인들과의 의사소통에 문제가 없을 정도로 잘하는 사람도 많았다. 베트남은 한국 못지않게 교육열이 높은 나라라고 한다. 이에 따라 글로벌 시장에서 임금은 낮지만 노동력의 질이 높은 점도 베트남의 주요 성장 동력으로 꼽힌다. 게다가 베트남 생산가능인구(15~64세)는 지난 2015년 기준 6570만명으로 총인구의 70%에 달한다. 젊은 노동력과 소비층이 풍부하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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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트남하면 떠오르는 오토바이 물결. [사진 = 김지혜 에디터] |
베트남의 매력에 흠뻑 빠졌지만 불편한 점도 있었다. 바로 베트남의 상징과도 같은 '오토바이 물결'이다. 도로를 가득 메운 이륜차 행렬은 끊임없이 매연을 만들어냈고 동남아 특유의 무더운 기후가 더해져 한낮엔 숨이 턱 막힐 때도 있었다. '호찌민을 돌아다니다 보면 매연 때문에 콧속이 까매진다'는 여행자들의 말이 떠올랐다. 이 때문인지 이륜차 운전자들 중 얼굴을 반 이상 덮는 큰 마스크를 쓴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또 보행자들가 우선이 아닌데다 신호등이 없는 길도 많아 위험했다. 오토바이가 계속 달려올 때는 언제 길을 건너야 할지 멈칫거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베트남인들이 자동차보다 오토바이를 많이 타는 이유에는 세금이 큰 부분을 차지한다. 현지인에 따르면 자동차를 구입하기 위해선 차값의 300%에 달하는 금액을 세금으로 내야 한다. 때문에 오토바이를 선호한다는 것. 이밖에 오토바이 위주의 도로 상황·법규, 대중교통 수단의 미비, 사람들의 편의성 등 다양한 요소가 복합적으로 얽혀 '오토바이 행렬'이라는 베트남만의 독특한 문화가 생겨났다.
내가 만약 '호찌민시는 볼 거 없다'라는 다른 사람들의 말에 휘둘렸다면 이 역동적인 도시의 매력을 알 수 있었을까. 직접 경험해보지 않는 한 진면모를 몰랐을 것이다.
소란스럽지만 다이내믹한 이 도시에서 나의 30대를 어떻게 보내야 할지 다짐했다. 타인의 말에 귀 기울이되 주변 환경에 흔들리지 말자. 나만의 중심을
지키자. 내가 보고 느끼고 확인하기 전까지 어떤 것도 재단하지 말자.
이런 생각이 들자 '서른 즈음에'라는 노래를 다시 곱씹게 됐다. 줏대없이 요동쳤던 철없는 나의 20대는 멀어져갔지만 '한층 성숙해진 청춘'이 시작됐음을.
[김지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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