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개 시·도 '지자체 부담' 조례…소방관들 "불이익 우려 신청 못해"
"긴급출동 방해하는 불법주차 차량 파손 면책" 요구 목소리 커져
지난 21일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 참사 때 소방 굴절 사다리 차량의 진입이 불법 주차 차량 탓에 지연되면서 구조가 지연됐습니다.
이로 인해 '골든타임'을 놓쳐 인명 피해가 컸다는 게 소방당국 주장입니다.
이런 논란 속에 소방차가 불법 주차 차량을 훼손하거나 밀어버려도 소방관들이 책임지지 않게 해 달라는 청와대 국민 청원이 지난 28일 오후까지 3만3천여명에 육박하는 지지를 받았습니다.
'불법 주차로 소방차 출동 지연시 주차차량 강제이동 및 파손시 소방서 책임면제' 글에는 9천974명, '소방차 화재 진압시 불법 주차 파손 정당화' 청원에는 3천280명이 동참했습니다.
긴급하게 출동한 소방차의 통행을 막거나 소방 활동에 방해되는 주·정차 차량의 '제거' 또는 '이동'은 소방기본법상 지금도 가능합니다.
'없애버린다'는 제거의 사전적 의미에 비춰볼 때 소방차의 긴급한 통행이 필요할 경우 차량 훼손도 가능한 것으로 해석됩니다.
소방 활동에 따른 차량 훼손 등에 고의나 중대한 과실이 없는 한 소방관의 형사상 책임이 줄거나 면책됩니다.
일부 광역 자치단체는 자체적으로 주차 차량 제거·이동에 따른 물적 손실이 발생할 경우 보상 기준도 마련했습니다.
소방관이나 민간인이 사이드 브레이크를 풀어 주·정차 차량을 치우는 것은 물론 차량이 훼손됐을 때 그에 따른 손실 보상을 지자체가 책임지는 것입니다.
이런 조례를 마련한 곳은 지난 21일 대형 화재로 29명의 사망자와 39명의 부상자가 난 충북은 물론 서울, 부산, 광주, 세종, 울산, 경기 등 7개 시·도입니다.
올해 3월 서울을 시작으로 제정되기 시작한 이런 조례가 소방관들의 부담을 덜어줄 것 같지만 현실은 다릅니다.
만간인이 청구한 보상 금액을 심의·의결할 손실보상심의위원회가 가동돼야 하는데 서울·부산 등을 제외하고 이 위원회가 설치된 곳을 찾기 어렵습니다.
근거는 있지만 아직 제대로 시행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탓에 조례가 제정돼 있어도 소방관들은 주·정차 차량을 치우는 것에 선뜻 나서지 못합니다.
소방청이 2015년부터 지난 6월까지 전국 소방관서에서 파악한 소방관 개인 변상 건수와 금액은 총 20건, 1천732만원에 달합니다.
땅속의 벌집을 제거하려고 토치램프를 썼다가 개인 임야로 불이 번지는 바람에 소방관 개인이 1천만원을 변상한 사례도 있습니다.
구조활동을 하다가 출입문 잠금잠치를 파손한 소방관이 이를 변상했고, 불이 난 빌라 2층에 사다리를 놓고 올라가려다가 노후된 방범창이 주차 차량 위로 떨어져 수리비를 물은 경우도 있습니다.
현행법에는 피해자가 변상을 요구할 경우 정부나 지자체가 부담할 근거가 있지만 대개의 경우 소방관들이 개인 돈으로 변상하고 사고를 마무리하는 게 관행처럼 굳어져 있습니다.
현행법과 조례상 소방 활동 때 제거·이동할 수 있는 차량은 불법 주차 차량뿐만 아니라 합법 주·정차 차량도 포함됩니다.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 때 인명 피해가 커진 이유로 불법 주차가 꼽히지만 엄밀히 말하면 불법이 아니라 '무분별한 주차'입니다.
현행법상 황색 실선이 그어져 있다면 주·정차를 할 수 없는 구간입니다. 그러나 흰색 선이 그어져 있거나 아예 선이 없는 도로에는 주·정차가 가능합니다.
이 때문에 주·정차 단속을 담당하는 행정관청은 이런 도로의 주·정차를 불법이 아닌 '무분별한 주차'라고 표현합니다.
이 센터 주변 도로에는 중앙선만 그어져 있을 뿐 갓길 쪽에는 그어진 선이 아예 없다. 주·정차 운전자들이 불법 행위를 한 것이 아니어서 책임을 물을 방법도 없습니다.
한 자치단체 관계자는 "황색선이 그어진 주·정차 단속구역이 아니라면 차량 주인에게 전화해 이동을 부탁하는 수 밖에 없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습니다.
소방서도 매달 출동 시간을
충북소방본부 관계자는 "골든타임 확보나 전통시장 내 소방통로 확보 훈련은 매달 실시하지만 이면도로 통로 확보 훈련은 하지 않는다"며 "제천 참사를 계기로 대책을 세울 필요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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