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흥도 낚싯배 전복…사망자 많았던 결정적 이유는
영흥도 낚싯배 전복을 두고 많은 사상자를 낸 원인에 대한 관심이 뜨겁습니다.
13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인천 낚싯배 선창1호(9.77t)에 탄 승객들은 부두를 출발한 지 몇분이 지나지 않아 참변을 당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현재까지의 생존자 증언과 해경 조사 결과를 종합하면 선창1호는 이날 오전 6시께 인천시 옹진군 영흥도 진두항을 출항했습니다.
대부분 오전 5시 이전 부두에 도착한 20∼60대 낚시객 20명은 선창1호 선장 A(70·실종)씨와 선원 B(40·사망)씨의 안내에 따라 개인용품과 낚시도구 등을 챙겨 배에 올랐습니다.
선창1호가 출발하기 전 해경 직원이 신분증을 일일이 검사하면서 신고된 승선 인원과 일치하는지 확인했고, 구명조끼 착용 등 주의사항을 전달했습니다.
부두를 출발한 선창1호는 어둠을 헤치고 남쪽을 향해 힘차게 달렸습니다.
그러나 잠시 후 단숨에 배가 뒤집힐 정도의 엄청난 충격이 배를 강타했습니다.
당시 승객 20명 중 대부분은 선실 안에 들어가 있었습니다.
한 생존자는 "선실에 자리가 넓지 않아 일행 2명과 함께 선미 쪽 갑판에 나와 있었다"며 "충돌 순간 강한 충격에 몸이 배 밖으로 튕겨 나가 바다에 빠졌다"고 사고 당시 순간을 전했습니다.
낚싯배가 급유선 '명진15호'(336t)와 부딪혀 전복되면서 바다에 빠진 승객들은 영상 7∼8도의 차디찬 물 속에서 구명조끼에 의지해 구조를 기다렸습니다.
명진15호 선장이 사고 사실을 112에 신고한 시간은 오전 6시 9분이며, 신고를 받고 현장에 도착한 첫 해경 선박인 고속단정이 도착할 때까지 명진15호의 선원들은 바다에 빠진 낚싯배 승객 4명을 구조했습니다.
해경은 뒤집힌 선체 안에 다수의 승객이 있다는 사실을 파악하고 수중구조팀을 선내로 투입해 오전 9시 6분까지 14명을 배 밖으로 빼냈습니다.
이 중 11명이 숨졌고 3명은 뒤집힌 배 안에 남아 있던 공기로 의존해 가까스로 목숨을 건졌습니다.
바다에 빠졌다가 명진15호나 해경에 발견된 선창1호 승선자 6명 중에서는 2명이 사망했습니다.
해경은 사망자 대부분이 선내에서 발견된 점에 비춰 이날 사고가 승객들이 탈출할 겨를도 없이 순식간에 벌어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해경은 사고 해역에 이날 약한 비가 내리고 간간이 천둥은 쳤지만, 풍속이 초속 8∼12m로 선박 운항에 큰 어려움은 없었던 것으로 파악했습니다.
인천해경 관계자는 "사고 선박 2척이 모두 남쪽으로 운항 중이었던 것으로 확인됐으나 배들이 부딪친 시간을 포함한 정확한 사고 경위는 수색작업 이후 조사할 방침"이라고 말했습니다.
일각에서는 전복된 배 안에 들어갈 수 있는 수중구조팀이 신고 접수으로부터 1시간여가 지난 오전 7시 17분 사고 현장에 도착한 것을 두고 '골든 타임'을 놓친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골든 타임은 인명을 구조하기 위한 최적의 시간을 의미합니다.
선창1호는 출항 9분 만인 오전 6시 9분께 진두항 남서방 약 1마일(1.6㎞) 해상에서 인천항을 출발해 평탱항으로 향하던 336t급 급유선과 부딪혀 뒤집혔습니다.
그 사이 낚싯배와 충돌한 급유선 명진15호의 선원들은 바다에 빠진 낚싯배 승객 4명을 구조했습니다.
뒤집힌 낚싯배 안에는 14명이 갇혔고, 8명이 바다에 빠졌습니다.
선실에 있는 승객을 구하기 위해 오전 7시 36분 수중구조팀이 투입됐지만, 해경이 이들을 배 밖으로 구조했을때에는 전복된 배 안 남아 있던 공기에 의존해 14명 중 3명만 목숨을 건진 상태였습니다.
해경은 '골든 타임'을 놓쳤다는 지적에 대해 구조선박이 정박해 있는 장소와 출동지시를 받고 받고 항구를 빠져 나와서 가는 시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늦은 시간이 아니라는 입장입니다.
당시 사고가 나자 낚싯배와 충돌한 급유선 '명진15호'의 선장이 112에 신고했습니다.
신고를 접수한 인천해경은 오전 6시 13분 사고 해역과 가장 가까운 영흥파출소에 고속단정 출동을 지시했습니다. 고속단정은 오전 6시 26분 진두항을 출발해 오전 6시 42분 사고 현장에 도착했습니다. 112신고가 접수된 지 33분 만이었습니다.
인천해경 관계자는 "사고 선박은 정상적으로 낚시어선업 신고를 한 배로, 승선 정원(22명)도 준수해 출항절차에는 문제가 없는 상태였다"고 말했습니다.
사고 해역에는 해경과 군의 함정·헬기가 속속 출동해 수색·구조에 가세했지만, 실종된 선장 오씨와 승객 이모(57)씨는 이날 날이 저물 때까지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강한 물살 탓에 낚시객들이 사고 지점에서 바로 발견되지 않고 멀리 떨어진 곳에서 발견된 것도 인명피해를 더한 요인이 됐습니다.
배 안팎에서 발견된 승선원 20명 중 의식이 없던 이들이 끝내 숨지면서 사망자는 13명으로 늘었습니다. 나머지 생존자 7명은 인근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았습니다.
선체 안에서 발견된 14명 중 11명이 숨졌고, 바다에서 표류하다가 발견된 6명 중에는 2명이 사망했습니다.
전문가들은 선실에 있던 승객들이 선박 충돌의 충격으로 기절했다가 갑자기 물을 먹는 바람에 사망자가 많았을 것이란 의견도 내놓고 있습니다. 해상 표류자 중 사망자보다 선실 내 사망자가 많은 이유를 뒷받침합니다.
해경은 인천항을 출발해 평택항으로 향하던 명진15호가 영흥도 인근 해역에서 낚싯배 선창1호와 충돌하는 과정에서 선장 전씨와 갑판원 김씨가 충돌 회피 노력이나 견시(망보기)를 소홀히 했는지 등을 조사하고 있습니다.
해경은 낚싯배와 급유선이 바다에서 충돌한 이유가 물이 빠지는 시간대에 폭이 0.2마일로 좁아진 진두항 남쪽의 좁은 수로를 같은 방향으로 나란히 지나다가 부딪혔을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또 "급유선이 낚싯배의 왼쪽 뒤(선미)를 강하게 충격했다"는 선창1호의 일부 생존자 증언과 선창1호의 파손 부위가 선미인 점으로 미뤄 뒤에서 낚싯배가 들이받혔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습니다.
이날 오후 사고 해역에는 크레인 바지선이 도착, 전복된 선창1호를 인양했지만 배 안에서 실종자 2명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해경은 조명탄을 사용해 사고 해역 주변에서 야간수색을 벌이고 있습니다.
해경은 사고가 난 낚싯배가 합법적으로 허가를 받아 영업 중이었고, 이날 출항도 정상적인 신고를 거친 것으로 파악했다. 사고 당시 구조된 승객들도 모두 구명조끼를 착용한 상태였던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인천해경 관계자는 "급유선 선장이 조사 과정에서 낚싯배가 가까운 거리에서 운항 중인 사실을 알고 있었으며 자신의 과실을 인정하는 취지로 진술했다"고 말했습니다.
해경은 이날 오후 급유선 명진15호를 인천 북항 관공선 부두로 예인한데 이어, 전복된 낚싯배 선창1호는 4일 오전 인천해경 전용부두로 예인한다.
인천해양경찰서는 선창1호 선장 오모(70)씨와 낚시객 이모(57)씨 등 실종자 2명을 찾기 위해 4일 인천시 옹진군 영흥도 인근 해역에서 집중 수색작업을 벌였습니다.
야간 수색작업에는 해경 경비함정 30척, 해군 함정 7척, 관공선 1척 등 선박 38척과 해경 항공기 2대, 공군 항공기 1대가 투입됐습니다.
해경과 군은 사고해역을 8개 구역으로 나누고 조명탄 342발을 투하하며 수색작업을 벌였지만 실종자 2명을 발견하진 못했습니다.
해경은 날이 밝는 대로 경비함정을 보강 투입해 실종자 수색작업을 재개할 계획입니다.
사고 원인을 규명하기 위한 수사는 속도감 있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인천해경은 2일 선창1호를 들이받은 급유선 명진15호(336t급)의 선장 전모(37)씨와 갑판원 김모(46)씨를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긴급체포하고 정확한 사고 경위를 조사했습니다.
해경은 사고 당시 명진15호가 영흥도 남쪽 같은 방향으로 이동하던 선창1호를 들이받은 점을 고려할 때 명진15호 선장·갑판원의 충돌 회피 노력이나 견시(망보기)를 소홀히 했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해경 관계자는 "선장 전씨는 낚싯배가 가까운 거리에서 운항 중인 사실을 알고 있었으며 자신의 과실을 인정하는 취지로 진술했다"고 말했습니다.
명진15호는 2일 인천 북항 관공선부두로 이동했고, 선창1호는 예인선에 의해 3일 오전 5시 40분 인천해경부두에 도착했습니다.
선창1호는 2일 오전 6시 9분 인천시 영흥도 남서방 1마일 해상에서 명진15호와 충돌했다. 이 사고로 승선원 22명 중 13명이 숨지고 2명이 실종됐습니다.
'영흥도 낚싯배 전복' 사태를 본 영흥도 선장들은 "해당 급유선은 큰
조사를 받고 있는 급유선 선장은 잘못을 인정했으나 전복된 '영흥도 낚싯배'를 발견하고도 피하지 못한 죄를 피할 수는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또한 당시 선장 옆에 위치했어야 할 갑판원은 자리를 비웠던 것으로 알려져 '영흥도 낚싯배 전복' 논란이 가중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