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철거 중단 후 방치된 성매매 업소 |
지난 27일 오후 서울 청량리 속칭 '588거리'에 들어서자마자, 범죄예방 완장을 두룬 남성 2명이 득달같이 달려왔다. 이들은 20대 여성들인 기자와 동료에게 신분증을 요구하면서 "공실을 기웃거리길래 CCTV로 위치를 파악한 후 출동했다"라며 "이 구역에 공실이 많아 노숙자 등 위험한 사람이 많다"고 말했다. 명함을 건네며 청량리 588 지역 철거 상황 취재차 나왔다고 설명하자 이들은 "지난주에도 칼과 망치를 든 노숙자를 검거했으니 조심해서 다녀라"라고 당부했다.
↑ 철거 지역에 붙어있는 안내문 |
예정대로라면 지난달 이미 철거가 끝나야 했지만, 일부 성매매 업소와의 갈등으로 철거가 지연됐다. 철거 작업이 중단되면서 남은 건물들은 시골폐가를 방불케했고 거리에는 쓰레기와 건축자재들이 여기저기 나뒹굴어 이 일대는 마치 전쟁을 맞은 난민촌의 모습과 닮았다.
↑ 청소년 통행 금지 구역 팻말 |
비록 홍등은 꺼졌지만 청량리 588 입구에는 여전히 '청소년 통행 금지'라는 팻말이 서 있었다. 팻말이 무색하게 인근 학교 교복을 입은 남학생들이 자전거를 타고 골목을 누볐다.
깨진 거울이 즐비한 성매매 업소 건물 안쪽에는 여성들이 미처 챙기지 못한 소지품이 가득했다. 철거가 중단된 듯 보이는 낡은 모텔 건물은 누구나 출입이 가능할 정도로 관리가 허술했다. 건물 사진을 찍으려 하자 "사진 찍지 마세요!"라는 목소리가 멀리서부터 들려왔다. 불과 몇십미터 밖에 있는 청량리역, 경동시장과 전혀 딴 세상으로, 이곳은 날씨 만큼이나 을씨년스러웠다.
↑ 철거가 중단된 모텔 |
↑ 성매매 업소 안쪽 누군가 써놓은 문구 |
한 주민은 "홍등가를 한 바퀴 돌아야만 옛 청량리 롯데백화점 주차장에 들어갈 수 있었다"라며 "아이들이 뭐 하는 곳 이냐고 물어볼때마다 미용실이라고 둘러댄 기억이 난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 깨진 유리 거울이 방치된 성매매 업소 |
동대문구 토박이 A씨는 "청량리 근처에 산다고 하면 집창촌 근처에 사냐는 얘기를 종종 들어 기분이 나빴는데 이제서야 철거가 되니 마음이 편하다"고 말했다. 대학생 B씨는 "어릴 적 엄마가 이 근처를 피해 다니라고 했던 게 기억난다"며 "하지만 지금도 폐허처럼 남아있어 친구들 사이에서는 위험한 지역으로 꼽힌다"라며 "빠른 철거를 원한다"고 덧붙였다.
↑ 청량리 588 초입 벽에 쓰인 문구 |
계획대로라면 2021년 이 자리에는 대규모
그때쯤이면 이곳은 588말고 뭘로 불리게 될까.재개발이 끝나면 '미운오리'에서 '백조'로 탈바꿈할까. 문득 궁금해진다.
[디지털뉴스국 노윤주 인턴기자 / 영상 = 윤해리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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