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귀순 병사 '이웅평' 귀순 계기는? "삼양라면"
이웅평은 1983년 북한의 공군 비행사로써 스스로 비행기를 조종하여 훈련 도중 한국으로 귀순한 북한 군인입니다.
1983년 2월 25일 서울에 공급경보가 울려퍼집니다. 서울, 인천, 경기가 폭격 대상이라는 경보에 시민들은 황급히 대피를 하지만 해당 전투기는 폭격이 아닌 귀순을 목적으로 운행된 것입니다.
해당 전투기는 이웅평 대위가 조종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당시 훈련중이었던 그는 북한의 레이더망을 피하기 위해 고도 100미터로 상공하여 연평도를 지나 북방 한계선을 넘어왔습니다.
이웅평 대위는 어느날 해안가를 걸으며 산책하다가 바다에서 떠밀려온 삼양라면 봉지 뒷면 설명서를 읽다가 다음과 같은 문구를 보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변질, 훼손된 물품은 본사 대리점이나 판매점에서 교환, 환불해드립니다."
이 말을 보고 이 대위는 '남조선은 이런 작은 것에도 인민들을 위해 정성을 들이는데 지상락원 북조선은 이게 무슨 꼴인가?'라며 의문을 품고 미그기를 탄 뒤 귀순하게 됩니다.
80년대 초 탈북자란 이름이 아직은 생소할 때 180이 넘는 큰 키에 훈훈한 모습으로 130명에 달하는 환영 인파가 몰리기도 했습니다.
귀순한지 3개월만에 그는 북한의 군복
그는 대령으로 진급한 후에도 한국 공군대학에서 교관으로 계속 활동하였고 공군대학의 한 교수와 결혼하여 가족을 꾸렸습니다.
하지만 북한의 보복을 심하게 걱정하며 그로 인해 처형당한 부모와 감옥에 간 가족들 때문에 폭음을 한 것이 원인이 돼 간 기능 저하로 향년 48세에 생을 마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