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 경북 포항에서 난 규모 5.4 지진 당시 진앙 주변 광범위한 지역에서 땅속에 있던 자갈, 물 등이 지표면을 뚫고 나올 만큼 강한 압력이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포항지진 후 국내에서 처음으로 발견한 '액상화' 현상을 현장 분석한 결과로, 학계 일부에선 "이 때문에 건물이 내려앉거나 기우뚱 쓰러지는 등 피해가 컸다"는 분석도 내놨습니다.
액상화는 강한 지진 흔들림으로 땅 아래 있던 흙탕물이 지표면 위로 솟아올라 지반이 순간적으로 액체와 같은 상태로 변화하는 현상입니다.
19일 한국지질자원연구원, 국내 활성단층 지도 제작을 하는 부산대 손문 교수팀 등은 진앙인 흥해읍 망천리 반경 5.5㎞ 안에서 액상화 현장조사를 벌였습니다. 액상화 흔적은 다양한 곳에서 여러 형태로 드러났습니다.
진앙에서 1∼2㎞ 떨어진 논에 이르니 바닥과 이랑이 맞닿은 곳에 난 틈새 주변으로 모래, 자갈 등 퇴적물이 수북하게 올라와 있었습니다.
퇴적물은 바닥에 있는 기존 진흙과 명확하게 차이가 났습니다. 이곳을 중심으로 좌·우 주변에도 같은 모습이 보였습니다.
이곳 퇴적물은 250만년 전부터 최근까지 땅속에 쌓인 것이라고 합니다.
김용식 국토지질연구본부 지질연구센터 선임연구원은 "땅속에 있는 물이 자갈을 들어 올릴 정도로 속력이 빨랐다는 흔적이다. 이번 지진으로 하부에 압력이 강하게 걸린 것이다"며 "땅을 받치고 있던 물 등이 빠졌기 때문에 일부에서 지반침하가 있을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곳에서 직선으로 200여m 떨어진 논 가운데 바닥에서는 수m 길이로 모래가 쌓여 있는 모습이 곳곳에서 보였습니다.
모래 퇴적층 중간 부위에 길이가 긴 균열이 나 있거나, 물이 채워졌다가 빠진 자리가 동그랗게 푹 꺼져 있기도 했습니다.
액상화는 진앙에서 동쪽으로 5.5㎞까지 떨어진 바닷가 근처에서도 나타났습니다.
강과 바다가 만나는 지점인 흥해읍 칠포리 한 백사장에는 지름 1㎝∼10㎝짜리 소형 샌드 볼케이노(모래 분출구) 수 십개가 있었습니다.
해외에서도 규모 5∼6 지진 발생 때 진앙 반경 5∼10㎞ 구간에서 액상화가 발생한 기록이 있다고 합니다.
김 선임연구원은 "땅속에 있는 퇴적물 내용이 다르므로 액상화가 나타난 반경 5.5㎞ 안 모든 지역이 위험하다고 단정할 수 없다"며 "하지만 만약에 대비해 지하시설물 안정성은 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습니다.
부산대 손문 교수팀은 포항 진앙 주변 2㎞ 반경에서 흙탕물이 분출된 흔적 100여 곳을 발견했습니다.
또 현장을 점검하며 지진 발생 당시 진앙 주변 논밭에 '물이 부글부글 끓으며 솟아올랐다'는 주민 증언도 확보했습니다.
손 교수팀은 "액상화가 발생하면 지표면 위 건물이 일시적으로 물 위에 떠 있는 상태가 된다"며 "기울어진 포항 대성아파트처럼 많은 건물이 액상화 영향으로 피해를 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기상청도 이날 드론을 동원해 진앙 주변 액상화 흔적을 항공촬영했습니다. 조만간 땅 주인 등과 협의한 뒤 직접 시추해 조사할 예정입니다.
전문가들은 액상화 현상이 국내에서는 조선시대 기록 등에서 비슷한 현상을 찾을 수 있으나 근대화 이후에는 처음있는 현상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해외에서는 액상화 현상이 빈번하게 일어난다고 합니다.
1906년 미국 샌프란시스코 지진 당시 해안에서 가까운 지역에 쌓인 퇴적물이 액상화 현상을 일으켜 3000명의 사망자와 20만명
중국 탕산 대지진 당시 진흙, 자갈, 모래 등으로 이뤄진 탕산시 남쪽의 충적평야에 규모 7.8의 강진이 발생해 순식간에 건축물이 휩쓸렸습니다. 이로 인해 약 24만명이 사망했습니다.
일본 역시 1964년 니가타 지진에 이어 1995년 한신 대지진,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등으로 액상화 현상이 이어진 것으로 알려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