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네 분은 친구역할을 좀 맡아주시고··· 이쪽 네 분은 직장 동료 하실게요." 민족 최대 명절인 추석연휴를 일주일 앞둔 지난 24일 오후 서울 서초구의 한 예식장 주변 한적한 공터에 말끔한 20~30대 정장 차림 남성들이 하나 둘 모여들었다. 일명 '하객 알바' 지원자들이다.
한 알선 업체에 이메일로 사진과 함께 간단한 자기소개를 보내니 예식 일주일 전 쯤 집합 장소와 시간과 함께 "기념 촬영과 자연스러운 연기가 부담스러우면 미리 포기하라"는 내용이 적힌 문자를 받을 수 있었다. 이날 12명의 참가자들은 4명씩 직장·친구·지인그룹으로 나뉘어 직장 선후배, 학교 선후배, 친구 등 역할을 배정 받았다. 기자의 역할은 직장 후배였다.
식장 앞에 도착해 직장 동료, 친구, 지인 순으로 입장 순서도 정했다. 신랑이 진짜 하객과 인사를 나누다 '썰렁'한 분위기가 만들어지는 빈틈을 노려 의뢰자와 간단한 축하 인사를 나눈 뒤 예식을 지켜보고 기념 촬영을 하면 끝이었다.
하객 알바의 최대 관건은 '자연스런 연기력'이였다. 그러나 생면부지 신랑에게 환환 웃음과 함께 "ㅇㅇ팀장님 축하합니다", "ㅇㅇ아 축하해"라고 말을 건네며 악수를 하는 일은 하는 쪽이나 받는 쪽이나 어색하고 씁쓸함은 피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경험있는 베태랑들은 "아이고 ㅇㅇ팀장, 오늘은 완전 다른 사람이 됐네. 얼굴이 완전 폈어"라며 손발이 오그라드는 '명연기'도 시전했다. 진짜 단연배우나 연극배우들이 소 일삼아 나온다는 소문도 있었다. 신부 측 하객은 신부대기실에 방문해 이야기를 나누고 사진도 함께 찍는 '고도의 연기'가 필요하다. 가끔 부케를 받는 친구 역할도 맡는다. 이 경우 1~3만원을 더 받을 수 있다. 조교격인 업체 남성은 "누구냐"고 옆에 참석객들이 물을 수 있으니 "진짜 가족이나 친구 근처에는 앉지 말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꿀알바' 소문과 달리 보수는 '열정페이' 수준이었다. 안내가 끝난 뒤 지급받은 알바비는 1만 5천원. 업체가 의뢰자로부터 받는 하객 1인당 요금인 3만원 중 절반을 가져가는 구조다. 대기 시간을 고려하면 예식이 끝날 때 까지 2시간 남짓 동안 시급 7500원 정도를 받는 셈인데 이날 차려입은 양복의 드라이크리닝비 등을 빼고 나면 그야말론 '본전'치기에 가까웠다. 일반 하객들에 제공되는 식사도 '하객알바'들에겐 제공되지 않았다.
여러 번 하객 알바 경험이 있다는 김 모씨(무직.35)는 "식사를 제공하는 곳도 있는 데 오늘 신랑 측이 좀 짜네"라며 "주말마다 다른 약속 전에 잠깐이면 되니까 하는 거지 돈 벌려고 할 일은 못 된다"라고 말했다.
하객 대행 알바가 '붐'이 일고 있는 건 아파트 주거 문화 등으로 공동체 사회 분위기가 갈수록 희석되면서 '동네친구'가 사라진 반면, 여전히 관혼상제 행사서 타인의 시선과 체면을 중시하는 사회 분위기 탓이다. 한국은 지난 2015년 OECD가 발표한 사회통합지표 중 '사회적 관계'에서 10점 만점에 0.2점을 받아 조사대상 36개국 중 최하위를 기록했다. "당신이 도움받기를 원할 때 기댈 가족이나 친구가 있느냐"는 질문에 긍정적으로 답한 비율을 따진 것이다.
업체 측 관계자에 따르면 이 외에도 재혼 부부, 부모가 결혼을 반대하는 경우에도 많이 쓴다. 부모 반대 결혼의 경우는 '부모 알바'까지 쓰기도 한다. 법조계나 의료계·대기업 종사자 등 고소득자가 붐비는 예식장 연출을 위해 수백 명씩 고용하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지난달 31일 한국소비자원이 발표한 결혼문화에 대한 인식 조사(전국 20~39세 성인 남녀 2,000명 대상, 미혼·기혼 각 1,000명)에 따르면 전체응답자의 84%가 '체면문화'를 결혼 문화의 가장 큰 문제로 꼽았다. 또 미혼자는 결혼식 적정 하객 수로 '100명 이하가 적정하다(45.3%)'고 답한 비율이 가장 높았으나 기혼자의 경우 실제 결혼식에 '200~300명의 하객을 초대했다(29.6%)'는 응답이 가장 많았다. 400명 이상을 초대했다는 응답도 19.4%였다. 막상 결혼할 때가 되면 하객 수와 '체면'을 신경 쓰게 된다는 얘기다.
이러다 보니 업체측은 '보안'에 각별히 신경쓴다. 계약서엔 '비밀유지'조항도 있다. 이날은 의뢰자 부모에게도 정체를 숨겨야 했다
[임형준 기자 / 박재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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