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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에도 '요새 뭐 볼 만한 영화 없어?'라는 질문을 많이 받지만 절기 때마다 이런 질문에 대답하기는 쉽지 않다. 그 '볼 만한' 이라는 문구가 문제다. '추석 연휴에', '가족들과' 등의 수식어가 붙으면 머릿속은 더욱 복잡해진다. 대체 추석에 볼 만한 영화란 어떤 것일까. 올해는 그런 작품을 만날 수 있을까.
작년에는 '밀정'(감독 김지운)이 무난했다. 2012년 추석을 앞두고 개봉해 천 이백만 관객을 동원한 '광해, 왕이 된 남자'(감독 추창민) 만큼 대중적이지는 않았지만 주제 면에서 누구와 보아도 좋은 작품이었고, 완성도 높은 장르영화였다. 올 추석 (상업영화) 라인업도 꽤 볼만하다. '킹스맨: 골든 서클'(감독 매튜 본, 9월 27일 개봉), '남한산성'(감독 황동혁, 10월 3일 개봉), '범죄도시'(감독 강윤성, 10월 3일 개봉)가 본격적으로 연휴를 겨냥한 작품들이고, '아이 캔 스피크'(감독 김현석, 9월 21일 개봉)는 이들보다 좀 더 앞서 개봉해 입소문을 타고 추석까지 진격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아이 캔 스피크'는 동네 할머니와 동사무소 직원의 티격태격 코미디로 시작해 정치 사회적 이슈를 건드리는, 이제까지 없었던 위안부 소재의 영화로 주목받고 있다. 오락성에 역사의식이 더해져 있어 여러 모로 접근성이 좋다. '12세 이상 관람가' 라는 등급 또한 가족 단위의 관객들을 불러 모을 수 있는 장점이다. 전편이 국내에서 큰 인기를 모았던 '킹스맨: 골든 서클'은 감독과 배우들이 내한하는 등 대대적인 프로모션 중이다. 1편의 폭발적 상상력과 비교했을 때 다소 평범해졌다는 실망감을 지울 수 없지만 오락 영화로는 역시 훌륭하다. 단, 주지하다시피 부모님과 보기에 적합한 작품은 아니다.
같은 날 개봉하는 '남한산성'과 '범죄도시'는 올 설 연휴의 '더 킹'(감독 한재림)과 '공조'(감독 김성훈)의 맞대결을 떠올리게 한다. -작품의 제목까지 두 글자, 네 글자로 같은 것은 우연일까, 운명일까- 김 훈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남한산성'은 미장센, 서사의 구조 및 호흡 등 모든 면에서 웰 메이드한 작품이다. 황동혁 감독은 '도가니', '수상한 그녀' 등 전작에서는 기대할 수 없었던 차분한 시선과 세련된 연출을 보여준다. 또한, 김윤석, 이병헌, 박해일, 고수 등 화려한 면면의 배우들이 1/N의 비중으로 등장하는데, 각자의 아우라를 십분 보여줄 뿐 아니라 상대배우와 드라마의 간을 맞춰 나가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어느 순간 그 정확한 농도에 소름이 끼칠 정도다.
'범죄도시'는 마동석, 윤계상 주연의 코믹 범죄물로, '공조'보다도 훨씬 저예산으로 찍은 작품이며, 영화의 결이 완전히 다른 만큼 단순 비교하기 어렵지만 프로덕션의 퀄리티로 볼 때, '남한산성'에는 비할 바 없이 떨어진다. 청소년들이 좋아할 만한 코미디가 장점인데 조폭 소탕 작전이라는 서사의 특성상 잔인한 장면이 있어 (현재)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을 받은 것도 불리하다. 그런데 이 영화, 추석 연휴에 용감하게 출사표를 내던졌을 만큼 그저, 재밌다. '부산행'(감독 연상호)을 천만 영화로 만드는데 큰 공을 세운 마동석, 그의 마력적 애드리브, 그리고 처음으로 악역에 도전한 윤계상의 카리스마가 백 가지 단점을 뛰어넘는다. 최종적으로 '더 킹'의 예매율과 관객 스코어를 앞질렀던 '공조'처
[윤성은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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