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은 정말 신중해야 하는 거니까 1년간 인턴기간을 갖자"
"살아보고 혼인신고 하자. 헤어질 때는 단칼에 끝내자"
한 공중파 주말드라마에서 한때 연인 관계에서 헤어졌다 다시 만나 결혼을 결심한 남녀가 주고받은 대화다.
요즘 결혼풍속도가 달라지고 있다.
옛날에는 혼인 당일 난생 처음 본 배우자와 천생연분을 기약했던 때가 있었다. 상대방 얼굴에 곰보 자국이 있고 흉하게 생겨도 '당신은 내 운명'으로 받아들여야 했다.
최근에는 결혼식은 올리되 일정기간 살아본 후 혼인신고를 하고 결혼생활 지속여부를 판단하는 '결혼인턴제'가 신풍속도로 등장하고 있다. 나이가 지긋한 세대에서는 '해괴망측'한 생각이라며 "세상이 변해도 너무 변했다"고 말한다.
사랑하는 연인과 결혼을 했지만 살면서 예기치 않게 부딪히는 가족 간 갈등, 성격차이, 경제적 문제 등으로 이혼이 늘면서 결혼인턴제는 선택이 아닌 필수라는 의견도 있다. 결혼 후 돌이킬 수 없는 선택으로 '앞이 창창한 내 인생에 오점을 남기고 싶지 않다'는 생각도 한 몫 하고 있다.
다른 한편에서는 상대방에 대한 확신이 없다면 아예 결혼이라는 형식을 갖추지 않는 게 본인과 배우자 그리고 가족에 대한 예의라는 시각도 있다. 결혼이 장난이 아닌데 일정기간 살아보고 혼인신고를 하는 인턴제는 애초 서로에 대한 신뢰와 믿음의 결여에서 출발한다는 점에서 적절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결혼인턴제에 대해 우리 주변의 20·30들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솔직한 얘기를 들어봤다.
이달 말 결혼을 앞둔 예비신부 이 모씨(32)는 결혼인턴제에 대해 긍정적 입장이다. 이씨는 "결혼이 둘만의 문제로 끝나는 게 아닌 만큼, 결혼인턴제는 가족을 포함한 주변 사람들의 포괄적 성향을 파악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말했다. 이씨는 "게다가 살아보면서 서로의 단점과 장점에 대한 이해도를 높일 수 있다는 점도 긍정적"이라고 덧붙였다.
다만 이씨는 "가족 등 주변의 평가와 잔소리, 실제 혼인을 하는 것과의 차이가 애매하다는 점에서 실행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본다"며" 결혼인턴제에 대한 동경은 있지만 나 자신은 용기 부족으로 실행하기 어려울 것 같다"고 털어놨다.
미혼 여성인 손 모씨(29)는 "요즘에는 결혼식을 올려도 혼인신고를 늦게 하는 부부들이 꽤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같이 사는 것은 연애와는 또 다른 문제"라고 말했다. 손씨는 "살면서 안 맞을 수 있고 혼인신고를 했는데 헤어지게 되면 복잡해지는 만큼 결혼인턴제가 필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한 차례 이혼 경험이 있는 김 모씨(38)는 "꿈꾸는 결혼과 현실 결혼의 간극은 크다"면서 "결혼인턴제에 찬성한다"고 말했다.
기혼 남성인 성 모씨(39)는 부모에게 알린다는 조건부로 결혼인턴제에 긍정적 신호를 보냈다.
성씨는 "부모에게 이런(결혼인턴제) 사실을 알리면 서로에 대한 책임감이 더 생길 것 같다"면서 "결혼인턴제가 부부가 되기 위한 하나의 과정이고 이것이 목적인만큼 나쁘지 않다"고 말했다.
이에 반해 미혼 여성인 김 모씨(27)는 "결혼인턴제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손사래를 쳤다.
김씨는 "결혼인턴제는 남녀가 심사숙고해서 결정한 '결혼'이라는 결정의 무게를 줄이는 것"이라고 평가절하하며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결혼이 취업도 아닌데 효율성을 이유로 유예기간을 갖는 건 너무 각박한 것 같다"며 "혼전동거 또한 같은 맥락에서 말도 안 되는 것이라 생각한다"고 펄쩍 뛰었다.
미혼 남성인 윤 모씨(31)도 "평판에 금이 갈 수 있으니 '살아보고 결혼하자'라는 게 말이 되는 소리냐"고 반문했다. 윤씨는 "남 일에 뭔 상관인가 하겠지만 결혼인턴제나 혼전동거 경험이 있는 사람은 절대 배우자로 선택하고 싶지 않다"고
결혼 5년차 남성 고 모씨(35는 "상대방에 대한 확신이 없으면 애초 결혼이라는 형식을 갖추지 않는 게 서로에 대한 예의"라며 "결혼이 당사자 둘 만의 문제로 끝나는 게 아닌 만큼 결혼인턴제는 상대방 가족에 대해서도 예의가 아니다"고 일침을 놨다.
[디지털뉴스국 전종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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