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용빈 계장 [신수현 기자] |
"2003년 고1 때 TV에서 케이원(K-1) 경기를 보다가 킥복싱 선수들의 격투 모습에 반해 무에타이를 시작했습니다. 무에타이 챔피언 출신인 태국 트레이너에게 무에타이의 주요 기술인 클린치를 배우면서 실력이 늘었습니다. 2004년 10월 국제킥복싱연맹 주최 국내 골든글로브 대회에 출전한 후 최고의 무에타이 선수가 되겠다고 결심했죠."
무에타이 선수에게 체중관리는 아주 중요하다. 경기 당일 오전 선수의 체중을 측정해 체급 기준을 초과하면 경기에 출전하지 못해서다. 그는 시합일엔 아무 것도 먹지 못하고 경기에 나설 만큼 혹독하게 자신을 몰아붙였다. 초코우유가 너무 먹고 싶어서 샀다가 먹지 못했던 적도 있을 만큼 자기관리에 철저했다. 그는 2005년 국내 '신인왕전' 우승을 시작으로 이후 출전 경기마다 승리하며 그 해 국가대표로 선발됐다.
그는 학업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중학생 때 아버지 사업이 어려워져 자발적으로 실업계 고등학교에 진학했지만, 고3 때 대학에 진학하기로 마음을 바꾸면서 학업에도 집중해 2006년 경상대 도시공학과에 입학했다.
거침없이 질주하던 그에게 제동이 걸린 것은 2006년 3월 태국 세계선수권 대회였다. 그는 53.5kg급 경기에 한국 대표로 출전했지만 8강전에서 코뼈가 부러지는 등 큰 부상을 입었다.
"링 위에 올라가면 아무 소리도 안 들려요. 아드레날린이 마구 분비되니까 맞아도 고통도 별로 못 느낍니다. 시합 당일 아침 체중을 쟀는데 53.5kg을 초과해서 한 끼도 못 먹고 시합에 나갔더니 기운이 없었어요. 피가 철철 났지만 아프다는 느낌보다 국내에서 늘 이기다가 지니까 창피한 생각이 먼저 들더군요."
그는 그 대회 이후 전처럼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 2007년 운동을 그만 두고 학업에 매진해 2010년 대학을 졸업하고 학군단(ROTC)으로 입대했다. 운동을 그만 둔 것은 세계선수권에서 우승해도 상금이 많지 않고, 코치로 활동해도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 등 경제적 요인 탓이 컸다. 제대 후 2013년 호주로 워킹홀리데이를 떠나 무에타이 강사로 활동했다. 많이 벌 때는 일주일에 100만원도 벌었지만 무에타이가 비인기 스포츠라서 안정적인 수익을 얻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2014년 7월 한국으로 돌아온 그는 한 중소기업에서 영업사원으로 6개월 정도 일하기도 했지만 자신의 길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후 농협은행원이 되기로 결심하고 준비해 100대 1이 넘는 경쟁률을 뚫고 2015년 하반기 신입 공채에서 합격했다.
"삼성직무적성검사 관련 책 등으로 필기시험을 대비했고 영국 BBC방송, 신문 등으로 시사이슈를 공부했습니다. 금융용어도 열심히 익혔지요."
서 계장은 운동선수 경험이 은행원 업무에 체력적·정신적으로 큰 도움이 된다고 강조했다. "카드·외환업무와 개인신용대출 업무 등을 맡고 있는데 지난해 11월부터 올 3월까지 경상대 학생들에게 학생증 5000여 장을 발급하는 업무로 주말에도 자발적으로 일할 정도로 업무량이 많았지만 체력이 좋아 끄떡없었습니다. 운동할 때 자신을 한계치까지 몰아가며 정신 관리를 한 덕분인지 막무가내로 행동하는 고객에게도 미소로 대응할 수 있네요."
서 계장이 꿈꾸는 제2 인생은 어떤 모습일까. "한국을 대표하는 무에타이 선
[신수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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