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위치한 그리보예도바 운하 앞에선 차백성 씨.운하 뒤로 피의 구세주성당이 보인다. <사진제공=차백성> |
자전거 여행가 차백성 씨(67). 그는 지난 28일 대우건설 후배들에게 '자전거와 인생'을 주제로 강연에 나섰다. 서울 강남구 대치동 대우푸르지오밸리에서 진행된 강연에는 지홍근 대우건설 전무 등 100여 명의 임직원들이 참석해 한 때 그들의 선배였던 차백성 씨의 이야기에 따뜻한 박수를 보냈다.
자전거 여행가로 제2의 인생을 살아가는 차백성 씨는 1976년에 대우그룹 공채 1기로 입사해 상무 자리까지 올랐던 전형적인 '대우맨'이다. 대우의 세계경영부터 해체까지 그룹의 역사와 함께했던 '성공한 샐러리맨'이었던 그가 2000년 돌연 회사에 사표를 던졌을 때 많은 사람들은 그에게 "미쳤다"고 했지만 차 씨가 선택한 건 '꿈' 이었다.
"50세에 접어들면서 인생의 전기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직장은 영원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에 뒤늦은 방황을 시작했죠. 남들은 부러워하는 대기업 임원이지만, 인생이 이 걸로 끝난다면 참 허무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젊은 시설부터 꿈꿔온 자전거 여행가의 페달을 밟아야겠다는 결심을 한 거죠."
그가 새로운 삶을 선택하는데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람은 바로 한국의 배낭여행 1세대인 고(故) 김찬삼 교수였다. 지리학자였던 김찬삼 교수는 1958년 세계 여행을 떠나며 당시 청년들에게 바깥 세상에 대한 꿈을 심어준 여행가다.
하버드대학에 교환교수로 갔다가 갑작스런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게 된 그의 부친의 영향도 컸다.
"어린 시절 아버지와의 예상치 못한 이별은 인생에 대한 고민을 일찍 시작하게 만들었습니다. 자연스럽게 '웰빙'과 '웰다잉'에 대한 고민을 하며 살아왔죠. 제 자신도 어느 날 갑작스런 죽음을 맞이할 수 있을텐데 후회하지 않을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던 것 같습니다."
차 씨는 지금까지 자전거 여행가로 33개국을 돌며 10만km를 달렸다. 그는 전 세계를 돌면서 자신이 겪은 이야기와 생각을 담아 꾸준히 책으로 내고 있다. '아메리카 로드' '재팬 로드' 그리고 '유럽 로드'는 자전거 여행가의 생생한 경험담 뿐만 아니라 각국의 역사와 문화를 담은 자전거 여행가들의 필독서로 자리잡았다.
차 씨는 한 번씩 길을 떠날 때 마다 하루에 100km씩은 달린다. 그의 여정은 보통 한 달을 훌쩍 넘어간다. 자전거 여행은 삶의 축소판이기 때문에 모든 의식주를 다 담아 떠난다. 이렇게 장기간 여행을 떠나면 경비가 부담스러울 것도 같은데 그는 책을 쓰고 강연을 하면서 수입원을 마련해 다음 여행을 준비한다. 그는 여행 전 각 대륙에 맞는 테마를 정하고 이에 맞게 역사, 문화를 공부하는 데 보통 6개월의 시간을 투자한다. 그는 "돈이 많아서 취미로 삶을 즐긴다는 오해도 받지만, 돈이 많았다면 힘들고 어려운 자전거 여행이 아니라 편안한 여행을 즐겼을 것"이라며 웃었다.
차 씨는 자전거 여행가로 이름이 알려지면서 삼성의 'SERI CEO' 강사, 문화체육관광부 자전거 홍보대사, 자전거 전문잡지 편집위원 등으로도 활약하고 있다. 하지만 차 씨가 자전거 여행을 통해 얻은 소중한 것들은 이런 타이틀이 아니라 삶의 공간을 확장하면서 인생을 길고 풍요롭게 사는 맛을 알게 된 것 그리고 젊은이들을 친구로 삼을 수 있게 된 점이다.
"제가 살면서 늘 기억하는 두 단어는 '카르페 디엠(carpe diem)'과 '메멘토 모리(memento mori)'입니다. 전자는 지금 살고 있는 현재 이 순간에 충실하라는 뜻이고 후자는 죽음을 기억하라는 말이죠. 이 두 단어를 마음에 품고 살다 보면 절대로 소중한 순간들을 놓치거나 낭비할 수 없습니다."
차 씨는 이달 말부터 다시 열정의 두 바퀴에 도전한다. 이번에 계획한 자전거 로드는 스페인의 산티아고 순례길을 포함해 포르투갈의 이베리아 반도 등을 아우르는 여정이다. 다
"직장인으로 치열하게 산 사람이 제2의 인생도 치열하게 살 수 있습니다. 조직에 몸담고 있는 동안은 나의 무기를 갖고 일단 조직에 최선을 다하세요. 하지만 언젠가 직장을 그만 두어도 내 인생을 만들어 나갈 수 있다는 꿈은 절대로 버리지 마세요."
[이윤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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