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지방 전문대를 졸업한 박 모씨. 학교에 개설된 '학사학위 전공심화과정'을 이수한 그는 엄연한 정식 학사학위 소지자다. 하지만 박 씨는 입사 지원서를 작성할 때마다 막막한 심정이다. 때론 아예 지원조차 못할 때도 있다. 기업 채용 사이트에 이 과정을 통해 학사학위를 딴 전문대 졸업(예정)자를 위한 입력란이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박 씨는 "입사 지원서에 전문학사로 학력을 '하향기재'하지 않는 한 입사 지원조차 할 수 없는 기업들이 많다"며 "기업들이 이런 제도가 있는지 모르고 있다는 것도 문제고, 알고도 이를 수정하지 않는 건 더 문제 아니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지난해 수도권 전문대를 졸업한 이 모씨도 심화과정을 거쳐 학사학위를 취득했지만 입사 지원때는 전문대학 졸업자(전문학사 학위자)로 지원해야 했다. 이후 인사담당자에게 별도로 연락하고 까다로운 확인과정을 거쳐 지원내용을 수정하는 번거로운 절차를 거치며 진땀을 흘렸다. 이 씨는 "사이트 구성을 약간만 변경하면 되니 큰 비용이 들거나 기술적으로 어려운 일도 아닐 것"이라며 "기업들이 조금만 관심을 보여줘도 우리 같은 졸업생들이 부당한 대우를 받지 않아도 될 일 아니냐"고 되물었다.
전문대학이 개설한 학사학위 전공심화과정을 졸업한 학생들이 홍보부족과 기업들의 무관심 속에 취업시장에서 설움을 당하고 있다. 1~2년간 학교를 더 다니며 현장 중심 실무심화교육을 받고 정식 학사학위를 취득했음에도 기업체 채용 사이트의 학력사항 기재란에 전문대학 학사학위 표기 기능이 없는 사례가 많기 때문이다. 이때문에 일부 기업에 대해 입사지원을 포기하거나, 전문학사 취득자로 학력을 낮춰 지원하는 등 적지 않은 학생들이 불이익을 당하고 있다.
23일 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가 최근 채용공고가 진행 중인 기업을 중심으로 무작위 조사한 바에 따르면 두산그룹, GS 에너지, 농협, 대림그룹 등 국내 주요 기업 등의 입사지원시스템에서는 전문대 입력란을 별도로 두거나 최종학력을 입력하게 돼있지만 학사학위 소지 여부를 입력할 수는 없게 돼 있다. 한국가스기술공사, 한국표준과학연구원 등 공기업과 정부산하 연구기관 입사지원 사이트에서도 학사학위 소지 여부는 확인할 수 없었다. 구인·구직 사이트인 '사람인'에서도 '대학(2, 3년)'으로 전문대졸자가 지원은 할 수 있지만 전공심화과정이 별도로 표기돼 있지 않다. 학사학위를 따도 이를 인정받지 못하는 셈이다. 한 기업체 측은 "이런 과정(학사학위 전공심화과정)이 있는지도 몰랐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실무능력을 갖춘 전문직업인 배출을 위해 지난 2008년 도입된 학사학위 전공심화과정은 한 해 1만여명이 등록하고 9000명 가까운 학생들이 졸업할 정도로 전문대생들에겐 널리 알려진 제도다. 지금까지 누적 졸업생만도 4만여명에 달한다. 하지만 채용시장과 산업현장에선 학사학위 소지자로 제대로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오병진 협의회 학사지원실장은 "대한상공회의소 등 경제 단체는 물론, 총 3000개 기업에도 일일이 협조문을 보내 전공심화과정 이수자들의 학사학위 반영이 가능하게 해줄 것을 요청했지만 실제 개선은 잘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며
한 채용업계 관계자는 "대부분 기업들이 전공심화과정 학사학위에 무관심한 건 사실"이라며 "해당 과정을 통해 취득한 학위가 4년제 대학 학위와 동등하지 않다는 편견이 밑바탕에 깔린 것으로 보인다"고 귀띔했다.
[이호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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