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우리 정보당국은 "북한이 공작원을 침투시켜 주요 탈북 인사를 암살하라는 지령을 내렸다"는 첩보를 입수했다. 김일성 일가의 3대 세습을 비판하고 김정일·김정은 정권의 허구를 폭로하는 대북전단지를 배포해온 박상학 자유북한운동연합 대표(49) 등 탈북자 8인이 북의 '암살리스트'에 오른 것으로 전해졌다.
국내에 김정남 피살 소식이 알려지자 이들의 마음도 쇳덩이 마냥 무거워졌다. 대다수가 평소 심각한 수준의 살해위협을 느끼고 있는데다 이번 김정남 피살은 김정은 세습체제를 반대해온 주요 인사들에게 보낸 '경고장' 성격도 짙기 때문이다.
15일 매일경제가 정보 당국이 입수한 암살대상 탈북인사 8명과 모두 전화 인터뷰한 결과, 취재에 응한 5명 가운데 4명은 "실제 암살 위협을 경험하거나 느낀 적이 있다"고 답했다. 인터뷰를 거절한 나머지 탈북인사 3인도 "신변위협 때문에 응할 수 없다" 답해 거의 대부분이 북 테러 위협을 염려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리스트에 오른 대표적 인사로는 박상학 대표가 꼽힌다. 박 대표는 지난 2000년에 탈북해 2004년부터 대북 전단지를 날리기 시작한 인물. 대북 전단에 '노이로제' 반응을 보여 온 김정은에게는 '눈엣가시' 같은 존재다.
실제 박 대표는 지난 2011년 9월 김정남이 피살된 것으로 알려진 방식과 동일하게 북한에서 보낸 공작원에 의해 암살당한 뻔 했다. 북한 인민무력부 산하 후방총국 장교 출신 탈북자 안 모씨가 독침과 독총으로 박 대표를 테러하려 했던 것. 미리 알아챈 우리 정보요원이 박 대표를 가로막아 겨우 죽을 고비를 넘겼다.
박 대표는 "내 경험을 봐도 그렇고 얼마전 탈북자들이 북한에 선교했던 목사 두분을 중국서 독침으로 살해한 전례도 있다"며 "김정은이 가장 죽이고 싶어하는 사람이 김정남이었기에 북한 지령에 의한 것이라는 걸 100% 확신한다"고 말했다. 그는 "뉴스를 보여 온 몸이 섬뜩했던 것도 김정남 피살이 태영호 공사나 우리같은 소위 '배신자'에게 보내는 경고이기도 하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탈북자들과 함께 민간 대북방송 '자유북한방송'을 운영해온 김성민 대표(55)는 "도끼에 피를 바르거나 식칼, 죽은 생쥐를 넣어 소포를 보내는 등 정체모를 섬뜩한 협박을 수차례 받고 있다"며 "밤길을 가기 힘들 정도로 불안감을 느낀 게 한 두번이 아니다"고 경험담을 털어놨다. 탈북군인 단체인 '북한인민해방전선'을 이끌고 있는 최정훈(46) 사령관도 김정남 테러 방식과 비슷하게 여간첩의 암살기도를 직접 경험했다고 밝혔다.
그는 "언론에는 안 알려졌지만 나를 암살할 목적으로 남파된 여간첩이 국정원에 발각돼 암살 계획을 실토하고 3년형을 살고 나왔다"며 "이메일로도 '인간 쓰레기들 , 이 땅에서 쓸어버리겠다' '자녀들까지 가만 놔두지 않겠다'는 식의 협박이 끊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들은 '암살대상 낙인'이 목숨이 붙어 있는 한 평생 갈 것으로 각오하고 있다. 탈북자 출신 강명도(58) 경기대 교수는 "제가 남한 언론에 '최고 존엄'에 관한 민감한 사항을 계속 이야기하면서 암살 대상에 오른 것"이라며 "북한 일가를 파헤친데 대한 응징이고 간단히 끝날 문제가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위협 때문에 이들 주변에는 거주지 관할 경찰관과 신변보호관들이 쉽게 떠나지 못한다. 안찬일(63) 세계북한연구센터 회장은 "조금만 방심하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라 신변 보호관들의 밀착 경호를 받으며 조심스럽게 활동하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 경찰은 김정남 피살 소식에 탈북인사 신변보호 장치를 강화하고 나섰다. 현재 주요 테러대상 명단에 오른 탈북자는 '가급'과 '나급'으로 나누어 경찰 신변보호관의 밀착 경호를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가급의 경우 관할 경찰서 보완과 소속 경찰관이 이들을 24시간 밀착하며 신변 보호를 받게 되고, 나급은 전화상으
경찰 관계자는 "14일 저녁부터 주요 탈북 인사 등 수십명에 대해 신변유예도에 따라 신변보호팀을 추가 배치했다"며 "이들의 주거지 등에 대해서도 CCTV 체크 등 방범순찰을 강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유준호 기자 / 임형준 기자 / 양연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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