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에는 김정은 만세를 외치지만 저녁에는 집에서 이불을 쓰고 한국 영화를 보고 있는 것이 북한의 현실입니다."
영국 주재 북한 대사관에서 근무하다 탈북한 태영호 전 공사가 한 말이죠.
어제 기자회견장에서 그는 북한이 2017년까지 핵무기를 완성할거란 폭탄 발언과 함께 북한까지 불고 있는 '한류' 현상에 대해 증언했습니다.
국내에서도 인기리에 방영 됐던 이 수많은 작품들을 고위직 간부들은 물론 일반 주민도 보고 있다는 겁니다.
북한의 방송채널은 조선중앙TV 뿐이고, 일반 가정엔 인터넷도 보급되지 않았는데 이들은 어떻게 이런 것들을 보고 있는 걸까요?
가장 많이 사용하는 건 이 두 가지, '노트텔'과 '아랫동네 알'입니다.
주로 중국에서 수입하는 소형 영상물 시청 장치, '노트텔'은 작은 배터리로도 USB나 DVD같은 메모리에 저장된 수많은 영상을 재생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태블릿 PC 정도로 크기가 작기 때문에 많은 북한 주민들이 선호한다고 합니다.
'아랫동네 알'은 남한에서 만든 영상물이 저장된 USB나 DVD를 말하는데, 이걸 사거나 빌려서 노트텔로 시청하는거죠.
최근엔 노트텔 대신 중국산 MP5나 스마트폰, 북한산 태블릿 PC까지도 사용하고 있는데, 자본이 좀 있는 사람들은 남한의 비디오방처럼 동네 주민들에게 돈을 받고 원하는 영상물을 보여주며 몰래 영업을 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한국 드라마가 확산되자 지난 6월엔 노트텔 수입 금지 명령, 8월엔 노트텔 몰수 조치까지 내려졌다는데, 단속이 제대로 됐을까요?
태영호 / 전 주영 북한대사관 공사 (어제, 기자간담회)
-"북한 애들은 지금 너무 한국 영화나 드라마를 많이 봐서 말투도 이젠 한국식으로 변하고 있어요. 예를 들면 북한에 없던 말투, 처녀 총각이 연애할 때 '자기야' '오빠야' 이런 말투는 우리 때는 없었거든요."
단속은 커녕, 북한에서 한류는 더 확산됐습니다.
예전엔 한국에서 종영한 뒤 최소 두 달은 지나야 했지만, 최근엔 이르면 일주일도 안 돼 볼 수 있다니 그 속도도 점점 빨라지고 있죠.
태영호 / 전 주영 북한대사관 공사 (어제, 기자간담회)
-"한국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한국 아이들은 아이 때부터 군용 배낭 같은 것을 메고 학원 다니고 하며 공부 열심히 하고…. 제 아들의 경우에도 보면 한국에 가서 과연 저런 애들하고 대학에 들어가서 아이 때부터 수십 년 동안 저렇게 머리 싸매고 공부한 아이들하고 과연 경쟁해서 이길 수 있겠는가…."
폐쇄된 북한 사회의 주민들에게 한국의 대중문화는 바깥 세상을 내다보는 창이자, 언젠간 경험하게 될지 모를 탈북민의 삶을 미리 체험해 보는 시뮬레이션의 수단까지 되고 있습니다.
이쯤하면 북한이 긴장해야할 것은 미국 등 국제사회의 제재가 아니라, '한류'라고 해야겠죠?
김정은은 2017년 한국과 미국의 정권이 바뀌는 혼란을 틈타 핵무기를 완성할거라고 했습니다.
핵무기만이 정권을 지킬 유일한 수단이라고 믿고 있는 거죠.
하지만 작은 구멍 하나가 둑을 무너뜨린다고 하듯, 3대에 걸쳐 열심히 쌓아온 독재와 고립의 둑은 '한류'란 작은 구멍으로 이미 무너져 가고 있다는 걸 알아야할 겁니다.
그리고, 그 바람은 이미 멈출 수 없다는 것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