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성 고병원성 AI 확진 "자식같은 오리들 죽어나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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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연합뉴스 |
고병원성 조류 인플루엔자(AI)인 H5N6형 바이러스가 국내에서 처음 검출된 충남 천안시 풍세면에서 닭을 키우는 신모씨는 요즈음 가슴이 시커멓게 타들어갑니다.
예전 발생했던 AI보다 병원성이 더 강한 바이러스가 국내로 유입돼 전국 곳곳을 휩쓸며 가금류 살처분이 속출하는데도 축산당국이 적절한 대책을 마련, 대응하기는커녕 속수무책으로 뒷짐만 지고 있는 것 같아서입니다.
그는 저녁 무렵 하늘을 바라볼 때마다 울화통이 터진다. 하늘을 시커멓게 뒤덮은 철새 분변이 축사에 떨어질까 노심초사하기 일쑤입니다.
신씨는 "아무리 차단 방역을 해도 하늘에서 떨어지는 분변을 어떻게 막겠느냐"며 "일정 기간만이라도 철새 수렵을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자식 같은 오리들이 하루 밤새 AI에 감염돼 수만마리씩 살처분 당하는 걸 지켜보는 심정을 알기나 하느냐"고 원망을 쏟아내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홀로 속을 태우는 농장주는 신씨 뿐만이 아닙니다. AI가 휩쓸어 수만 마리의 닭과 오리를 살처분한 충북 음성군 맹동면 농장주들은 총소리라도 내게 해 농장 주변에 몰려든 철새를 쫓아내는 게 급선무라고 입을 모읍니다.
날벼락처럼 하늘에서 떨어지는 고병원성 AI 바이러스를 함유한 철새 분변을 막기 위해서는 허공에 엽총이라도 쏴 철새가 농장에 접근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축산 방역 담당 공무원들은 이런 농장주들의 요구에 사색이 돼 손사래를 칩니다. 속이 타는 농장주들의 절박한 심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절대 그런 식으로 쫓아서는 안 된다"고 막습니다.
엽총을 쏴 철새를 잡아본들 기껏 몇 마리 포획하는 데 그칠 뿐 아니라 무리 지어 날아다니는 철새의 특성상 오히려 AI 바이러스를 다른 지역으로 더 빠르게 퍼지게 할 수 있다는 점에서입니다.
축산당국 관계자는 "애지중지 키우던 오리를 살처분하는 광경을 지켜보며 치밀어 오르는 감정에서 울컥해 하는 얘기겠지만 총기로 해결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고 말했습니다.
AI 확진·의심 농장이 이어지면서 예방적 살처분을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도 거셉니다. 중국에서 인명 피해까지 초래한 H5N6형 바이러스를 조기 차단하기 위해서는 살처분 대상 지역을 넓혀야 한다는 것입니다.
2014년 반년이 넘는 195일간 전국적으로 'AI 몸살'을 경험했던 당시 충북도는 다른 지자체와 달리 일찌감치 반경 3㎞ 내 예방적 살처분에 적극적으로 나서 도 자체적으로 85일 만에 AI를 종식한 사례도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농림축산식품부나 지자체 모두 이런 '강경 진압' 방식에 고개를 가로젓습니다.
AI 확진 농가를 중심으로 반경 500m 이내의 농가에 대해서만 예방적 살처분하고 일제검사에서 양성 반응을 보일 때에 한해서만 살처분 하자는 입장입니다.
당국이 이렇게 소극적으로 나서는 대표적인 이유는 재정 부담 때문입니다.
농가에 지급하는 살처분 보상금 80%는 국비, 나머지 20%를 광역·기초자치단체가 분담하는데 중앙정부는 물론, 지자체들 역시 적게는 수억원, 많게는 수십억원 달하는 보상금을 마련하려면 재정이 휘청거릴 수밖에 없습니다.
지자체가 살처분 확대를 꺼리는 또 다른 이유는 농장주들이 방역을 소홀히 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예방적 살처분 범위를 반경 3㎞로 확대할 경우 농가들이 보상금에만 의존, '나 몰라라' 하고 방역을 게을리하면 AI가 더 확산, 폐해가 클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지자체의 축산 방역 담당자는 "정부도 예방적 살처분 확대에 긍정적이지는 않다"며 "역학관계를 조사하면서 그에 맞춰 적절하게 살처분 범위를 정하는 게 합리적"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하루 밤새 애써 기른 수만마리의 오리나 닭이 AI에 감염돼 살처분해야 하는 가금류 농장주들에게 이런 공무원들의 주장이 곧이곧대로 들리지는 않고 있습니다.
최근 최순실 파문으로 시국이 어수선한 탓에 공무원들이 AI 대응에 소극적인 것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를 보냅니다.
한 농장주는 "적극적인 초기 살처분 대응으로 AI 확산을 차단할 수 있는 데도 보상금 증액 책임을 지지 않으려고 안일하게 대응하다 되레 화를 키울 수 있다"며 "공무원들이 현장 실태를 파악하지 않은 채 탁상에서 면피용 대응을 하는 것 같다"고 불만을 터뜨렸습니다.
AI 감염원을 철새로 단정, 감염 경로 파악이나 예방에 소극적인 당국의 방역체계를 비판하는 목소리도 나옵니다.
충남대 수의과대학 서상희 교수는 "철새 분변에서 고병원성 바이러스가 검출되니까 철새를 지목하는데 명확히 확인된 것은 없다"며 "우리나라 가금류 사육장 대부분 창문이 없는 실내공간이라는 점에서 철새 분변에 의해 직접 감염될 가능성은 적다"고 진단했습니다.
그러면서 "정부가 철새 분변 검사에는 많은 돈을 쓰면서 정작 가금류 농장 검사는 거의 하
서 교수는 "가금류가 폐사한 뒤 신고할 때는 이미 바이러스가 엄청나게 방출된 단계이고 다른 농장으로 전파됐을 가능성도 크다"며 "바이러스 검사만 제대로 해도 AI로 해마다 가금류 수십만 마리를 살처분하는 일이 반복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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