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배님 힘내시고 수능 대박나십시오.” “말(馬)은 없어도 말(言) 잘 듣는 우리 딸 수능 대박나라.”
‘국정농단’ 최순실 게이트가 대한민국을 뒤흔드는 가운데 찾아온 대학수학능력시험. 고사장의 열띤 응원전과 두손 모아 자식들의 건승을 기대하는 부모들의 모습은 예년과 마찬가지였다.
17일 오전 8시 전국 각 시험장 앞에서는 이른 아침 쌀쌀한 날씨를 무색게 하듯 수험생들을 응원하는 학부모와 후배들 응원가가 울려 퍼졌다. 시국이 시국인 만큼 일부 학교에서는 비선실세 국정농단을 풍자한 응원 피켓이 등장하기도 했다. 한 경찰관은 시계가 없어 안절부절 못하는 학생을 위해 자신의 시계를 벗어주는 등 훈훈한 풍경도 벌어졌다.
이날 서울 서초구 반포고에서는 서초고, 서문여고, 양재고 수험생과 재수생 등 644명이 수능시험을 치렀다. 새벽부터 후배들은 학교 점퍼를 입고 교문 양 옆에 서서 응원 구호를 외쳤다. ‘올해 수능은 너의 것’, ‘응답하라 정답들아’ 등 응원 피켓도 내걸었다.
오전 5시부터 나와 있었다는 학생은 “선배들을 응원하기에 좋은 자리를 맡으려고 일찍 왔다”며 수험생들에게 준비해온 귤과 초콜릿을 나눠줬다.
지난 월요일 수시 합격 통보를 받았다는 양재고의 하 모군은 “수능 최저등급 요건이 없어서 오늘 시험을 보지 않는다. 혼자 시험을 안봐서 친구들에게 미안하기도 하고 또 힘이 되고 싶은 마음에 응원으로라도 함께하고자 나왔다”고 전했다.
수험생 579명이 시험을 치른 서울 서초구 서초고에서도 자녀를 고사장으로 들여보낸 뒤에도 교문 앞을 서성이는 학부모들이 눈에 띄었다. 일부 학부모는 정문에서 자녀와 포옹을 하거나 손을 잡고 “시간을 잘 안배하도록 하라”는 등 마지막까지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숙명여고에 다니는 고3 수험생 딸을 시험장으로 들여 보낸 김 모(52)씨는 “우리딸은 최순실 딸처럼 말(馬)은 없어도 말(言) 잘 듣는 착한 아이”라며 “그런 부정한 사람들보다 훨씬 더 좋은 결과를 얻을 거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최근 국민적 공분을 불러일으킨 최씨 모녀의 국정농단 사건을 패러디한 응원 피켓도 등장해 눈길을 끌었다. 서문여고 학생회는 반포고 앞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사과 담화문을 풍자해 ‘이러려고 대박났나. 만족감 들어’라는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수험생들을 응원했다.
전북 전주 기전여고 앞에 응원을 나온 일부 학생은 ‘2016년 헬게이트 시험’이라고 쓴 풍자 피켓을 들기도 했다. ‘한국사 영역’ 피켓에는 최순실씨와 그의 딸 정유라씨 사진을 놓고 ‘다음 두 인물은 어떤 학파 출신인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영어영역’ 피켓에는 박 대통령으로 추정되는 인물 사진에 ‘Who is she?’(그녀는 누구인가?)라는 질문과 함께 ‘Siri(시리),Siho(시호),Yura(유라),Gil La Im(길라임),Donald Trump(도널드 트럼프)’라는 보기를 제시했다. 인천여고 정문 앞에도 ‘온 우주의 기를 모아 합격’과 같은 시국 풍자 문구가 등장했다.
올해 최고령 응시생은 서울 쌍문동 정의여자고등학교에서 시험을 치른 김정자(79) 할머니였다.
훈훈한 미담사례도 많았다. 오전 8시7분쯤 수능 고사장 주변 교통정리를 했던 울산 중부경찰서 교통안전계 소속 이기쁨 순경은 울산 학성여고 출입문에서 입실 완료 시간이 다됐는 데도 고사장에 들어가지 않고 당황해하는 한 수험생을 발견했다. 이유를 묻자 수험생은 “집에 시계를 놓고 와 엄마가 시계를 구하러 갔는 데 너무 늦을 것 같다”고 울먹였다. 이 순경은 선뜻 자신의 시계를 풀어 줬고 수험생은 무사히 시험을 치렀다.
반면 올해도 가슴아픈 풍경을 보인 학교도 있었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세월호 참사 희생학생들의 모교인 단원고는 수능시험장으로 사용되지 않았다. 다만 단원고 인근 안산 부곡고등학교에서는 802명이 수능시험을 치렀다. 시험장 입실하는 학생들 중 여럿은 노란 리본을 가방에 매달고 입장하는 모습이
[박재영 기자 / 양연호 기자 / 임형준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