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어김없이 아이가 운다. 시계가 가리키는 시각은 새벽 2시. 뜨뜻해진 기저귀를 갈아달라는 신호다. 예민한 성격인 줄은 알았지만 요새 같아선 ‘칸트’선생 저리가라고 할 정도로 정확한 시간에 정확하게 운다. 다행히(?) 우는 시간은 굉장히 짧다. 축축한 기저귀를 빨리 갈아주기만 하면 신기하게 다시 잠이 든다. 쌔근쌔근 자는 아이의 모습은 그야말로 천사가 따로 없다.
친정도, 시댁도 멀리 있는 나는 아이와 함께 잔다. 처음에는 시어머니나 친정 어머니께 아이를 맡기고 잔다는 워킹맘들을 보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퇴근 후 마치 하루 종일 엄마만 기다렸다는 듯 놀아달라는 아이의 손을 뿌리치기 어려워 파김치가 돼도 1~2시간 정도 아이와 놀아줘야 했기 때문이다. 그 이후 집안일 역시 엄마의 몫이다.
밤 사이 꿀잠을 맛보고 싶어서도 부러웠다. 더우면 더운대로 머리에 흥건히 젖은 땀을 닦아주느라, 환기를 시켜주느라, 또 이불을 걷어내기 시작한 이후부터는 틈만 나면 배 부위를 덮어주느라 수시로 무시로 아들의 상태를 확인해야했기 때문이다. 그런 엄마의 노고를 아는지 모르는지, 새벽같이 눈을 떠 놀아달라고 보채는 아이에게 비몽사몽인 나는 “엄마 10분만 더 잘게. 10분만”이라고 애원하기 일쑤다.
잠이 항상 부족한 나는 제발 나 대신 누군가가 애 좀 데리고 재워줬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이는 불가능한 일인지라 빨리 포기하는 게 내 정신건강에 좋았다.
친정 어머니는 수면부족에 시달리는 내게 “훈짐은 밤에 피어나는 법이야”라고 종종 위로하셨다. 여기서 ‘훈짐’은 전라도 사투리로 ‘뜨거운 김’정도로 해석할 수 있다. 대부분의 낮 시간을 엄마와 떨어져 지내도 아이들이 ‘엄마가 날 사랑하고 있구나’란 느낌을 받는 이유가 바로 밤 시간 훈짐 때문이라는 얘기다.
선뜻 이해가 잘 안갔다. ‘피곤에 찌든 엄마가 밤 사이 얼마나 사랑을 전해줄 수 있을까?’ ‘야근이라도 하고오면 이미 아이는 잠들어 엄마가 온 줄도 모르는데?’ ‘이불 몇번 덮어주고, 기저귀 몇번 갈아주는데도 아이가 내 사랑을 느낄 수 있다고?’ 그냥 힘들어하는 나를 위로해 주시려고 친정 어머니가 하는 말인줄로만 여겼다.
밤사이 ‘으에에엥’ 울며 깨는 아이는 정확히 “엄마, 엄마”라고 말한다. 안아달라고 우는 아이에게 어느 때부턴가 난 “엄마 여기있어, 괜찮아”라고 말만 한채 다시 잠이 든다. 엄마의 이런 목소리를 들은 아이 역시 잠이 다시 든다. 내 머리카락을 살살 만지며, 가슴팍으로 파고드는 아이의 온기는 세상 어느 것보다도 따뜻하다. 그런 체온을 나누는게 밤사이 피는 훈짐이라면 분명 나는 아이와 사랑을 주고 받는 것이겠지만, 여전히 부족하다.
정말로 낮 시간동안 엄마와 떨어져 있는 아이는, 엄마가 많이많이 사랑한다는 것을 알고 있을까? 워킹맘들은 어느 누구라도 마음 한 구석 지고 있는 짐과 같은 질문이다. 아이의 마음을 다 알 순 없기에 이 질문에 대한 정확한 답을 아직 찾지는 못했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밤사이 아이를 돌보며 내 스스로를 엄마로서 단련하고, 성숙해가고 있다는 것만은 분명한 것 같다.
비록 아이는 잠들어있지만, 밤 사이 난 아이 몸 구석구석을 살펴볼 수 있다. 체구가 워낙 작다보니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훑어보는데 10분이 채 걸리지 않는다. 손톱에 낀 때부터 콧구멍 안에 붙어있는 코딱지는 물론 똥꼬(?)에 붙어 있는 머리카락 한올, 무릎에 살짝 멍든 것까지. 낮 시간 나와 떨어져 있는 동안 생긴 아이의 흔적을 그렇게 살핀다. 그리고 내일 아침 아이를 돌봐주시는 선생님께 이런저런 말씀을 당부드려야겠다고 마음먹는다.
아이의 성정도 일부 파악할 수 있다. 잠버릇이 어떤지, 더위에 얼마나 약한지, 잠꼬대는 어떻게 하는지, 잠에서 막 깨면 어떤 행동을 보이는지, 밤새 얼마나 뒤척이는지 등등에 관해서 말이다. 애가 아프기라도 하는 날이면, 정말로 밤사이 훈짐은 모락모락 피어난다. 고열에 시달리느라 엄마 품에 축 늘어져 자는 아이를 보노라면, 이렇게라도 엄마를 느끼게 하는 게 참 다행이다란 생각을 한다. 비록 밤잠을 설치고, 그 다음날 피곤이 쓰나미처럼 몰려올 테지만, 엄마로서의 역할을 수행했다는 뿌듯함이 피곤함을 물리친다. 이런 게 밤 사이 사랑의 힘인가.
서구식 수면교육에 따르면 아이는 어리면 어릴 때일수록 혼자 잠자는 버릇을 들이는게 좋다고 한다. 하지만 이미 나와 붙어 자는 것이 익숙해진 아이에게 새로운 습관을 들이기가 어렵기도 하거니와 이렇게 어릴 때 아니면 언제 또 내 품안에 끼고 잘 수 있을까 하는 마음에 오늘도 난 아이와 함께 잔다.
요즘 아이는 나와 한 베개에 누워 가느다란 그 팔을 내 목 사이로 넣기를 좋아한다. 마치 아이가 나에게 팔베개를 해주며 “오늘 하루도 수고했어, 엄마”라고 무언의 위로를 해주는 것 같다. 훈짐은 밤에 피어오른다는 친정어머니의 말을 체감하는 순간이다. 워킹맘들에게 이런 온기를 나누
[디지털뉴스국 방영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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