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이는 28개월밖에 못 살았는데 (교수님은) 감옥에서 겨우 2년 살면 되는건가요”
옥시레킷벤키저(옥시·현 RB코리아)로부터 뒷돈을 받고 가습기 살균제 유해성 보고서를 조작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서울대 수의대 전 교수 조 모씨(57)에게 29일 징역 2년의 실형이 선고됐다. 가습기 살균제 사망사건이 수면 위로 드러난 뒤 5년만에 이뤄진 첫 형사처벌에 피해자들은 “형이 너무 가볍다”며 참아왔던 울분을 터뜨렸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2부(부장판사 남성민)는 “조씨는 국내 독성학 분야의 최고 권위자로서 사회적·도덕적 책임이 있지만 본분을 저버리고 옥시 측 금품을 받아 연구 윤리를 위반했다”며 징역 2년과 벌금 2500만원, 추징금 1200만원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조씨가 작성한 잘못된 보고서로 진상 규명이 지연됐고, 피해가 발생한 이유를 몰라서 자책하던 피해자 가족들의 고통을 가중시켰다”며 “그런데도 조씨는 제자에게 진술 번복을 회유하는 등 혐의를 부인하며 법정에서도 진지한 반성의 태도를 보이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조씨가 뒷돈의 대가로 옥시 입맛대로 ‘가습기 살균제와 폐 손상 사이 인과관계가 분명하지 않다’는 취지의 보고서를 작성했다는 혐의(수뢰 후 부정처사) 등 모든 혐의가 유죄로 인정됐다.
재판부는 ”옥시가 서울대에 지급한 2억5000만원 외에 조씨 개인계좌로 입금한 자문료 1200만은 연구 직무 관련 뇌물이 맞다”며 “돈을 받은 뒤 옥시 측 이해관계에 부합하도록 이 사건 최종 결과보고서에 옥시에 불리하거나 불리하게 해석될 수 있는 일부 실험데이터를 고의로 누락하는 등 부정한 행위를 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책임연구원인 조씨가 가습기 살균제 유해성과 관련해 옥시에 유리한 자문을 하기로 계약하고 연구용역비와 별도로 자문료를 수수하는 경우 연구수행의 공정성과 객관성을 의심받게 됨은 자명하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서울대 연구비 관리 규정을 어기고 산학협력단 몰래 돈을 받은 점 ▲돈을 받은 기간이 연구 계약 기간(2011년 10월 1일~2012년 9월 30일)과 겹치는 점 ▲단순한 자문의 대가로 보기에는 과도한 금액인 점을 근거로 자문료가 ‘뇌물’임을 인정했다.
재판부는 또 조씨가 데이터를 임의로 가공하거나 살균제 성분 유해성을 나타낸 흡입 독성 실험 내용을 누락한 혐의(증거 위조), 서울대 산합협력단으로부터 연구와 무관한 용도로 5600만원을 쓴 혐의(사기)도 모두 유죄라고 판단했다.
옥시는 질병관리본부가 2011년 8월 ‘가습기 살균제가 원인미상 폐 손상의 원인’이라는 역학조사 결과를 발표하자 이를 반박하기 위해 조씨에게 연구를 의뢰했다. 옥시에 유리하게 작성된 조씨의 보고서는 사건 진상을 밝히는 데 걸림돌로 작용했고, 올해 1월 검찰이 특별수사팀을 구성하기 전까지 수사가 중단되기도 했다. 피해자들의 민사상 손해배상 소송도 과학적 인과관계를 둘러싼 갑론을박으로 장기화됐다.
긴 기다림 끝에 나온 선고 결과가 검찰이 구형한 징역 3년보다 낮게 나오자 법정에선 탄식이 흘러나왔다. 피해자들은 꾹꾹 눌러왔던 울분을 쏟아냈다. 한 남성은 조씨를 향해 “네가 죽인거야”라며 욕설과 비난을 퍼부었으며, 통곡하던 한 여성은 호흡곤란으로 쓰러져 구급차에 실려가기도 했다.
이번 선고는 가습기 살균제 사망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중앙
[김윤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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