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란법 시행일인 28일 가을운동회가 열린 서울 동대문구 소재 종암초등학교. 아침 일찍 운동복을 차려입은 아이와 학부모들이 삼삼오오 교문을 들어섰다. 한눈에 봐도 ‘확’ 달라진 모습은 아이들과 학부형 손에 아무 것도 없다는 것. 예년만 해도 학부형들이 운동회 사이사이에 아이들과 교사들에게 나눠줄 햄버거, 빵, 음료 등 간단한 음식물을 가져오곤 했는데 이젠 작은 ‘야쿠르트’ 하나 찾아볼 수 없었다.
이 학교 한경자 교감은 “날이 날인 만큼 많이들 민감하게 생각한다”며 “며칠 전에 교사들을 모아 관련 교육을 진행했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오늘 아침에 다시 한 번 경고 메신저를 보냈다”고 말했다. 법 시행 첫 날에 외부 개방행사인 운동회를 진행하니 혹여 ‘란파라치’들이 대거 올 수도 있다는 소문도 돌았다. 간식은 물론 기념품도 일절 금지했다.
줄다리기, 2인3각 등 오전 행사가 끝나자 학생과 교사들은 교실로 올라가 평소처럼 급식을 먹었고 학부모들은 아예 일찍 귀가했다. 학교 인근 김밥집 주인 A씨는 “예전 같으면 운동회 시즌 때 단체로 김밥주문이 제법 들어왔는데 이번엔 ‘뚝’ 끊어졌다”며 “김영란법 김영란법 해서 뭔가 했더니 이제야 실감이 난다”고 말했다.
태풍의 눈에 든 곳은 초등학교 뿐 아니다. 서울대의 한 단과대는 최근 9월 29일로 예정했던 기자 간담회를 취소했다. 교수들도 강연·식사 등 외부 일정을 급히 조정하는 모습이다. 서울대의 한 교수는 “대부분 교수들이 외부 강연을 취소했다고 들었고 나 역시 일정이 잡혀있던 강연 모두를 취소했다”면서 “법이 정착되기 전까지는 가급적 외부 강연을 하지 않도록 권하는 것이 학내 분위기”라고 말했다.
새로운 밥값문화인 ‘n분의 1’계산법이 본격 상륙하면서 식당가에선 평소보다 계산줄이 길어졌다. 각자 카드와 현금을 꺼내 밥값을 n분의 1로 따로 결제를 한 탓이다. 한 사람이 카드를 긁고 나머지 일행들이 현금을 꺼내 한사람에게 몰아주는 모습도 종종 목격됐다.
광화문 ‘ㅅ’중국집 주인 고모씨는 “손님 입장에서도 줄줄 서 오래 기다려야 하고 우리도 서빙을 해야 하는 데 계산대에 묶여있어 불편이 크다”고 말했다.
이런 불편을 해결하기 위한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앱)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김영란법으로 더치페이 문화가 확산될 것으로 기대되면서 은행들도 관련 앱을 발빠르게 내놓고 있다. 최근 출시된 농협 ‘올 원 뱅크’는 더치페이를 위한 그룹송금 기능을 탑재했다. 결제한 1명에게 나머지 사람들이 자기 몫의 밥값을 손쉽게 송급할 수 있다. 카톡이나 문제 메시지만 클릭하면 공인인증서와 같은 보안인증을 거치지 않고 송금이 가능하다.
스타트업 루트앤트리가 만든 앱 ‘영란이’는 김영란법 관련 정보를 제공한다. 앱을 켜고 자신이 다니는 직장을 입력
[황순민 기자 / 오찬종 기자 / 송민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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