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도로공사 서울영업소가 가까워지자 언론사별 취재 열기가 벌써부터 뜨거웠다. 추석 ‘민족 대이동’을 앞두고 서울요금소를 지나는 차량의 모습을 더 잘 찍기 위한 자리쟁탈전 때문이었다. 노희원(39) 교통방송 리포터는 이같은 취재 경쟁에 아랑곳않고 기자를 반겼다.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방송할 수 있는 그녀만의 스튜디오가 있어 한층 여유로워 보였다. 교통방송만 15년째 하고 있는 노씨는 “얼굴이 나오는 인터뷰는 처음이어서 긴장되네요”라며 수줍게 웃어보였다.
한국도로공사 서울영업소 3층에는 2평 남짓한 크기의 교통방송 스튜디오가 있다. 노씨가 30분에 한번씩 라디오로 교통상황을 전하는 곳이다. 교통상황실에서 제공하는 폐쇄회로 TV(CCTV) 100여대가 훤히 보이도록 벽면 한쪽을 통유리 해놓은 것이 인상적이었다. 그가 교통정보를 수집하는 수단은 책상 하나에 다 놓여있었다. 실시간 교통상황을 수집해 보여주는 모니터 2대, 전국 각지에서 제보를 받기 위한 전화기 1대, 그리고 목소리를 전달하는 마이크와 보온병, 망원경 각 1개씩이다.
↑ 노희원(39) 교통방송 리포터 |
-“그럼요. 긴박한 상황에서 빠르게 살펴보려면 망원경을 종종 이용하죠. 교통사고로 정체는 심한데 정작 교통사고 차량이 어디 있는지, 어떤 차종인지 CCTV상에서 정확히 보이지 않을 때가 있거든요. 물론 요즘은 CCTV 성능이 워낙 좋아 줌인(zoom-in)을 하면 자동차 번호판까지 다 보이기도 해요. 운전좌석과 보호자석은 물론이고요.”
▶‘1분’ 교통방송을 위한 준비는 어떻게 하나요?
-“30분마다 한번씩 1분 방송을 하고 있어요. 따라서 그 30분이 교통방송을 위한 준비 시간인데 엄청 타이트하죠. 주로 한국도로공사에서 제공하는 속보와 본사 교통센터에서 주는 정보를 실시간으로 수집합니다. 동시에 도로 곳곳에 설치된 CCTV화면을 뚫어져라 쳐다보죠(웃음). 살아있는 방송이 되려면 방송 중에도 눈과 귀를 항상 열고 있어야해요. 시민들로부터 받는 제보 역시 유용한 소스입니다.”
‘멀티 플레이어’는 이런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인 것 같다. 짧은 시간 안에 수집한 정보를 중요 순서대로 나열해 방송 원고를 쓰는 것도 오롯이 노씨의 몫. 2002년부터 교통방송 리포터로 활동해 온 노씨는 입사 후 2년 동안은 전국 지도를 항상 끼고 다니며 틈날 때마다 쳐다봤다고 한다. 교통방송 관련 지식과 지리 정보, 어휘를 쌓는데만 최소 2년이 걸렸다. 물론 지금도 쉬는 날이면 새로운 도로가 생긴 곳으로 차를 몰고 출발, 주변을 샅샅이 돌아본다. 직접 운전해서 가보면 고속도로에서 나들목을 빠져나갈 때 왜 그렇게 막히는지, 나들목 바로 바깥에 교통신호가 있기 때문이란 이유 등을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15년째 교통방송을 하고 있는데 어려운 점은 없나요?
-“첫 출근해서 첫 방송을 할 때면 지금도 여전히 긴장돼요. 그리고 사실 갈수록 (교통방송에 대한) 청취자분들의 기대치가 높아져 어려움을 느끼죠. 예전에는 ‘현재 정체되는 곳은 어디고, 막히지 않는 곳은 어디다’정도로 상황을 설명하기만 하면 됐는데, 지금은 정체가 풀리는 시간, 도착지까지의 소요시간 등 보다 자세한 정보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 할 일이 많아졌어요. 특히 ‘왜’ 도로가 막히는지 상황분석은 필수에요. 하지만 도무지 왜 막히는지를 모르는 소위 ‘유령 정체’ 구간이 많아 난감할 때도 많죠.”
▶방송 중 특별히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고속도로의 경우 화물차가 많이 다녀요. 그러다보니 차량에서 닭과 돼지, 소 심지어 타조 등 다양한 가축들이 이탈해 이들을 잡느라 정체를 빚는 경우가 심심치않게 있어요. 그래서 ‘현재 고속도로에는 닭들이 날아다니고 있습니다. 운전자 분들은 닭들을 조심하셔야 합니다’라고 방송멘트를 해야하는데 얼마나 웃기던지…. 웃음을 참느라 혼났어요. 또 갑자기 닭들이라고 해야하나 닭이라고 해야하나 고민이 무척 되는거 있죠?(웃음)”
▶방송을 하며 안타까웠던 적은 없나요?
-“왜 없었겠어요. 도로 곳곳에서 교통사고 난 것을 누구보다 빨리 알 수 있어서 참혹한 광경을 많이 보죠. 한번은 CCTV상에서도 확인가능할 정도로 도로 위 시뻘건 핏자국을 보는데, 경찰에게 물어보니 모녀가 탄 차량이었고 결국 둘다 사망했더라고요. 이 곳에서 제가 도움을 줄 수도 없고 그저 교통사고로 인한 정체 소식만 전해주는 것이 많이 안타까웠죠.”
▶교통 소통이 너무 잘 돼 할 말이 없던 적도 있나요?
-“저만의 노하우인데요, 정체가 시작된 도로는 30분이 지나 다음 방송을 할 때도 상황이 크게 바뀌지 않아요. 소통이 원활한 구간 역시 마찬가지죠. 30분 전에 한 말을 반복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저는 다양한 얘기를 하려고 노력하는 편이에요. 어제는 이랬던 도로가 한산하다랄지, 작년 이맘때는 어땠는데 지금은 이렇다랄지 과거 얘기를 하거나 오늘 이 도로를 통과한 후 목적지까지의 소요 시간을 예상하는 것이죠., 그래도 할 말이 없어지는 새벽 2~3시 경에는 보름달이 활짝 떴다는 얘기까지 해 방송분량을 채워 넣은 적이 있어요.”
▶얼굴 없는 리포터로 활동하면서 서운한 점은 없나요?
-“서운한 적은 없어요. 오히려 TV 리포터와 달리 오직 목소리만으로 상황을 전달해야해 그 점이 부담이긴 해요. 방송에서 얼굴이 보이면 목소리 상태가 좀 안좋더라도 표정이나 주변 그림으로 교통 상황 전달이 용이할텐데 저희는 오로지 목소리로만 전달해야하니…. 게다가 단 1분이라는 시간적 제약 속에 기침 소리를 청취자분들에게 들려주거나 이로 인해 ‘죄송합니다’라고 말하는 것조차 방송 흐름을 끊어 조심스러워요.”
노씨는 이날 인터뷰 촬영을 위해 스카프를 풀었을 뿐 평소에는 항상 목을 보호하는 차원에서 스카프를 두르고 다닌다고 했다. 여름에도 예외는 아니다. 특히 명절 특집 방송을 앞두고선 시부모님을 비롯한 가족들 앞에서도 말을 아낀다고 했다.
▶이번 추석 집중해서 볼 고속도로는 어디인가요?
-“경부·중부·서해안 고속도로 등을 손바닥 훑듯 집중해서 볼 거에요. 특히 서해안 고속도로에서 서평택 구간은 정체가 극심해 답답해하는 운전자들이 많아요. 그래서 이들에게 최신 교통상황을 전달하는데 주력할 겁니다. 솔직히 명절 기간에 막히지 않는 도로나 시간대를 찾기란 쉽지 않아요. 오히려 운전자들 각자가 내비게이션이나 앱을 통해 우회도로를 찾다보면 전혀 예상치 못한 도로에서 막히는 경우가 참 많죠. 남들은 모르겠거니 하는 시간대나 도로를 찾아 운전하지만 막상 남들 역시 이미 다 알고 오는 경우가 많아서 그래요. 차라리 이럴 땐 본 고속도로를 계속 타고 가는 게 제일 빠른 귀성길 일 수 있
추석 당일만 빼고 연휴기간 내내 5교대로 근무할 예정이란 노씨는 난생 처음 촬영까지 한 인터뷰에 너무 많은 말을 쏟아낸 것은 아닌지 걱정했다. 특집 방송을 위한 목 상태가 우려됐기 때문이다. ‘프로’ 정신으로 똘똘 무장해 있는 그였다.
[디지털뉴스국 방영덕 기자/ 박상원 인턴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