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시까지 물류센터로 바로 와요, B동이에요. B동."
전화기 속 남자의 목소리는 한 명이라도 간절한 듯 다급해 보였다. ‘알바몬’에 등록된 상하차 관련 공고만 약 800여 건. 추석을 코앞에 두고 물량이 몰려 일손이 모자란 탓이다. 전화로 사는 곳, 나이 등을 알려주자 상하차 구직은 당일 한방에 끝났다. 추석 연휴를 열흘 앞둔 지난 2일, 경기도 군포에 위치한 한 물류센터에 직접 노동자로 들어가봤다.
군포역에 내려 시내버스를 타고 외곽의 물류센터를 찾은 시간은 6시 반경. 초입부터 트레일러 차량이 길게 늘어서 진풍경을 이뤘다. 건물들엔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회사의 간판이 하나씩 붙어 있었고, 지게차와 트럭이 건물 사이를 쉼 없이 내달렸다. 묻고 물어 ‘H택배’의 B동을 어렵게 찾았다.
B동의 작은 사무실에서 관리 직원 A씨를 만났다. 명부에 이름만 적으면 일을 시작할 수 있단다. 계약서에 대해 물으니 “퇴근하고 신분증 사진과 계좌번호만 보내면 된다“는 답이 돌아왔다. 계약서를 쓰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닐까. 좀 더 캐 물으니 ”그럼 일하지 말든지“라는 반말이 들려온다. 이곳에 들어선 순간 그는 갑이고 나는 자연히 을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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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리장성 방불케 하는 화물…일급 15만원은 미끼였나
건물 내부는 그야말로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화물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컨베이어 벨트에서 끊임없이 쏟아져 내려왔고, 각 라인은 상하차를 기다리는 트럭의 컨테이너로 향해 있었다. 건물에 쌓인 박스와 화물은 만리장성을 쌓아도 모자라지 않을 법 했다. A씨는 “사람이 턱 없이 부족하다“며 내일도 나와 줄 것을 요청했다.
구인 사이트 공고에서 본 일급은 15만 원. 하지만 현장에서 말은 달랐다. 이 일급은 12시간을 하고 추가 잔업까지 해내야 받을 수 있는 금액이라는 것. 내가 일할 오후 7시에서 다음날 아침 6시까지의 일급은 이에 절반도 못 미치는 7만 원. 한마디로 15만원이란 임금은 일종의 ‘미끼’인 셈이다.
7시가 가까워 오자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이기 시작했다. 외국인부터 학생부터 머리가 희끗한 노인까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았다. 다양한 사람만큼이나 사연도 가지각색이다. 오늘이 상하차 첫날이라는 대학생 B씨는 “휴학 후 공부할 돈을 벌기 위해 나왔다”며 “어렵지 않다면 오랫동안 해볼 생각”이라고 귀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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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시간 중노동 속…휴식시간은 단 한 시간
일은 크게 3가지로 구분된다. 화물을 싣는 상차, 내리는 하차, 그리고 바코드를 찍는 스캔 작업, 신입들은 대개 하차, 경험이 있는 사람은 상차로 배치된다. 여성과 잔뼈가 굵은 고참 노동자 일부는 바코드로 스캔작업을 하며 라인 뒤에서 상하차를 코치하는 식이다.
나는 상차 9번 라인으로 배정됐다. 먼저 상차를 하고 있던 중년의 C씨는 자연스럽게 스캔 작업으로 슬며시 빠졌다. 그는 이 일이 상당한 노하우를 필요로 한다고 했다. 화물을 제대로 쌓아 올려야 짐을 많이 실을 뿐더러 하차 작업이 안전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컨베이어 벨트의 화물은 마치 테트리스처럼 크기도 모양도 예측할 수 없었다. 게임처럼 블록을 한번 잘못 쌓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가 없게 됐다.
시작한지 30분 만에 온몸은 땀범벅이 됐다. 입에서는 단내가 풀풀 풍겼다. 허리와 손목은 욱신거리기 시작했다. 컨베이어 벨트는 길고 어두운 트레일러 내부까지 들어와 화물을 뱉어냈다. 까마득히 남은 시간을 생각하자 공포가 밀려오기 시작했다.
유일한 휴식시간은 12시에서 1시까지 약 1시간 남짓의 식사시간. 이 외에는 공식적인 휴식 시간이 주어지지 않는다. 잠시 화물이 없으면 쉬는 것이고 계속 나오면 쉴수 없다. “담배 하나 피고 하자”고 하면 “피면서 해라”라는 말이 돌아왔다. 바로 옆 정수기의 물조차 먹을 시간도 없었다. 쉬는 것조차 컨베이어 속도에 맞춰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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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 사각지대는 그리 먼 곳에 있지 않았다
고강도의 노동으로 이탈자가 빈번히 발생했다. 작업 초반 얼굴을 익혔던 몇몇 학생들은 이제 어느 라인에서도 보이지 않았다. C씨에게 물으니 “그런 사람까지 신경 쓸 틈은 없다”며 갈테면 가라는 식의 답이 돌아왔다. 쌀, 책, 과일, 간이 소파까지 화물은 끊임없이 밀려왔다. 트레일러 속에서 사투를 벌이기 시작한지 2시간 남짓, 혼자 트럭 한대를 가득 채웠다. 찰나의 뿌듯함도 잠시, 또 트럭이 들어왔다는 C씨의 호통, 당장이라도 그만두고 싶었다.
C씨는 6개월 째 이 일을 해오고 있다고 했다. 나름의 보람도 느낀다고 했다. “남이 받는 건데 잘 다뤄야지” 손상이 쉬운 화물은 신경 써서 배치하는 등 나름의 철칙도 갖고 있었다. 혹시 그에게 사고라도 일어나지 않을지 걱정이 됐다. 산재 적용은 될 수 있는 걸까. 계약서에 대해 묻자 “안 쓰면 안 쓰는 거지 뭘”이란다. 노동 사각지대는 그리 먼 곳에 있지 않았다.
새벽 3시, 기자를 포함한 사람들은 하차 물량이 몰리는 반대편 라인으로 옮겨졌다. 피곤하고 힘든 만큼 다들 예민해져 갔다. 경험자들 간의 일하는 방식, 신참의 실수에 따라 분위기는 때로 험악하게 변했고 여기저기 고성이 오갔다. 한 라인은 다툼이 벌어져 몇몇 사람이 다른 라인으로 옮기는 일도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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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비, 담배 값 빼니 남은 돈은...‘오만 원’ 남짓
새벽 5시, 여전히 트럭들은 빈자리를 채웠다. 오전 6시가 되어 냉동 생선과 과일 상자를 실은 또 다른 트럭이 들어오자 사람들의 비명과 욕설이 들려왔다. 피로한 몸에 컨테이너 안의 물을 밟고 넘어지는 사람도 생겼다. B씨는 “힘든 것을 예상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아마 다른 일을 알아봐야 될 것 같다”며 푸념을 늘어놨다.
작업은 6시를 훌쩍 넘기고서야 마무리 됐다. 이미 팔과 다리는 감각이 사라진지 오래였다. 이미 정신은 반쯤 나간 상태였다. 사무실에서 퇴근 사인을 하는 사람들의 얼굴에서 피로가 묻어나왔다. 타인의 행복이 될 추석 택배는 누군가의 고통이 진득하게 배인 채 사람들에게 전해졌다.
약 1시간이 지났을 무렵 통장에 7만 원이란 돈이 찍혔다. 수지 타산
[MBN 뉴스센터 한전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