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뚜기 함태호 명예회장 별세…노블리스 오블리주의 모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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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뚜기 함태호/사진=연합뉴스 |
1969년 오뚜기를 창업한 함태호 명예회장은 47년간 외길을 걸어온 국내 식품산업의 선구자입니다.
외부에 알리지 않고 조용히 사회공헌을 실천하며 '노블리스 오블리주'의 모범을 보였습니다.
함 명예회장은 국내 식품에 대한 불신의 벽이 높던 시절, 국민이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제품을 공급하겠다는 신념으로 식품산업에 뛰어들었습니다.
이후 식품산업에만 매달린 끝에 오뚜기는 국내에서 가장 많은 1등 제품을 보유한 식품회사로 성장했습니다.
1969년 5월 창립 제품인 카레를 국내에 처음 대중화시켰고, 1971년과 1972년에는 케첩과 마요네즈를 국내 최초로 상품화했습니다.
1980년대 베스트푸드 마요네즈로 널리 알려진 미국의 CPC인터내셔널, 세계적인 케첩 회사인 미국의 하인즈사의 국내시장 진출로 치열한 경쟁이 펼쳐졌지만 오뚜기는 시장을 지켜냈습니다.
경영자로서 함 명예회장은 어느 경쟁사 제품보다 사용하기 편해야 하고, 경쟁사보다 맛과 내용이 풍부해야 한다며 '이지(easy)+리치(rich)'를 강조했습니다.
오뚜기는 창업 당시부터 수요가 없던 시장에서 제품을 만들며 성장해온 회사로, 경쟁사의 시장을 나눠 가지지 말고 새 수요를 창조해야 하는 것이 기본이라고도 그는 강조했습니다.
오뚜기 내부에서 함 명예회장은 철두철미한 기업가 정신과 근검절약하는 모습으로 기억됩니다.
오뚜기 관계자는 "일로는 엄하되 인간적으로는 누구보다도 형님 같고, 아버지 같고, 할아버지 같았던 다정한 분이었다"며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사회적 기여를 실천했고 누구보다 나라를 사랑하신 애국자였다"고 말했습니다.
함 명예회장은 어떠한 어려움이 있어도 준법을 강조했으며, 회사를 위하고 주주를 위하고 자신을 위해서라도 늘 근검 절약할 것을 외쳤다고 회사 관계자들은 전했습니다.
매년 연말 간부사원 부부를 초청해 한 해 동안 내조를 아끼지 않은 아내들에게 고마움을 전했고, 직접 현장을 방문해 사원들에게 관심을 표하기도 했다.
고인은 오뚜기 사가는 3절까지 부르고 애국가를 1절까지 부른다는 것은 국민의 도리가 아니라며 모든 행사에서 애국가를 4절까지 부르게 하고 국기게양도 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함 명예회장은 오로지 회사 경영에만 매진하며 외부 '감투'에는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러나 어린이와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를 돕기 위한 활동에는 열성적이었습니다.
지난해 11월에는 사회복지법인 밀알복지재단에 개인적으로 300억원대 규모의 주식을 기부해 화제가 됐다. 그는 남모르게 기부를 실천하려 했으나 공시로 그 사실이 알려졌습니다.
고인은 선천성 심장병을 앓는 어린이들이 10세 이전에 수술을 받지 못하면 생명을 잃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서는 1992년부터 한국심장재단과 함께 심장병 어린이 후원을 시작했다. 지난 7월 기준으로 오뚜기는 4천242명의 어린이에게 새 생명을 선사했습니다.
2012년 6월부터는 장애인학교와 장애인 재활센터를 운영하는 밀알재단의 '굿윌스토어'를 통해 장애인의 자립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함 명예회장이 사재를 출연해 설립한 오뚜기재단은 1997년부터 대
그 외 2012년 오뚜기봉사단을 출범하는 저소측 계층을 돕기도 이어오고 있습니다.
함 명예회장은 식품산업을 선도하는 선구자로서 지난 2005년 석탑산업훈장을, 2011년에는 국민훈장 동백장을 수훈했습니다.
[MBN 뉴스센터 / mbnreporter01@mb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