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쯤 되면 '감성 전문 배우'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듯하다. 감정이 사라진 좀비가 여주인공을 만나 사랑을 싹틔웠던 영화 '웜바디스'의 주인공 니콜라스 홀트가 이번에도 또 다시 감정을 다룬 영화 '이퀼스'로 돌아왔다.
영화의 배경은 감정이 통제된 미래 사회다. 그 속에서 사랑은 '생산성'에 해가 되는 불필요한 첨가물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주인공 사일러스(니콜라스 홀트 분)는 차가운 사회 속에서도 니아(크리스틴 스튜어트 분)에게 강렬한 끌림을 느낀다.
사실 '감정이 배제된 미래사회'가 창의적인 소재는 아니다. 이는 과거 '이퀼리브리엄'에서 펼쳐진 세계관과 닮았다. 하지만 '이퀼리브리엄'이 감정의 부재라는 문제를 과격한 폭력을 매개로 풀어내는 것과 달리, '이퀄스'는 사랑이라는 섬세한 장치로 해결한다.
극을 관통하는 주제인 사랑은 '이퀄리브리엄'의 주인공이 했던 것처럼 사회 자체를 박살내는 적극적인 파괴 행위를 동반하진 않는다. 주인공들은 단지 개인적인 일탈로서 사랑을 지켜내고자 한다. 그리고 배우들은 이 소심한 반항을 절제된 표정으로 스크린에 담아낸다.
영화 속 인물들은 러닝타임 초반부엔 싸늘할 만큼 무표정으로 일관한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감정이 싹트면서 남녀 주인공은 미묘한 변화를 보인다. 그러한 움직임을 홀트는 특유의 연기를 통해 효과적으로 보여줬다. 미세하게 한쪽 입 꼬리가 올라간 얼굴을 가진 그는 감정을 억누르지 못하는 표정을 순수한 어린아이 같이 표현한다. 웃음을 참지 못하는 십대처럼 천진한 얼굴이 감정과 함께 깨어나면서 관객들까지 그들의 사랑에 몰입하게 된다.
그의 표정 연기를 뚜렷하게 부각시킨 감독의 연출력도 뛰어났다. 감독은 주인공들의 감정변화를 빛이란 장치로 극대화했다. 차가운 백색의 백열 빛은 극의 30분을 담당하다가, 주인공의 감정이 깨어남에 따라 점차 따뜻하고 화사한 빛으로 변해갔다. 이로써 감독은 인물들의 변화를 인상적으로 나타냈다.
사일러스와 니아의 관계는 냉엄한 감시의 눈길 속에서 아름답게 피어난다. 동료들의 눈을 피해 화장실에서 아슬아슬하게 서로의 입술을 탐하는 그들의 모습은 마치 로미오와 줄리엣의 밀회를 연상시킨다. 다만 그 구속의 주체는 일개 부모님이 아니라 무자비
그럼에도 용감하게 난관을 헤쳐 나가는 그들, 그 끝은 셰익스피어의 로맨스처럼 비극일까. 숨 돌릴 틈 없이 바쁜 현실 속에서 사랑을 잊었다면 이 영화를 통해 다시금 그 소중함을 느껴보는 것도 좋겠다. 영화 ‘이퀼스’, 런닝타임 101분, 8월 31일 개봉.
[MBN 뉴스센터 홍태화 / mbnreporter01@mb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