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직장생활을 하던 2005년, 난 처음으로 운전대를 잡았다. 녹색불에 움직이고 빨간불에 멈춰서는 그 당연한 교통신호를 지키며 드디어 나도 사회의 엄연한 구성원이 됐다는 생각에 무척 뿌듯했다. 스스로 브레이크 페달을 밟았다 뗐다 하면서, 수시로 다른 차량의 움직임을 곁눈질하는 것만으로도 진정 남과 더불어 사는 사회에 편입했다는 느낌에 혼자 우쭐해하기도 했다.
올 여름 지하철, 기차, 버스, 택시는 물론 비행기에 배까지 육해공 교통수단을 모두 다 섭렵한 아들 녀석을 보면 마찬가지의 뿌듯함과 자랑스러움이 밀려온다. 두살배기 아들의 적응력이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뛰어나서다. 아이는 긴 이동 시간 움직임이 크게 제약을 받는 좁은 공간에서 잘 견뎠으며 보채더라도 엄마가 달래주면 금방 멈췄다. 때로는 타인과의 눈맞춤에 함박웃음까지 보여줬다.
여러 사람들과 함께 있는 공간에 대한 인식을 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는 생각에 더 뿌듯했다(아들 바보 인정!). 머지 않아(유치원만 가더라도) 우리 아이가 사회의 구성원으로 당당히 활약할 것이라는 기대감은 당장의 육체적, 정신적 고달픔을 싹 다 잊게 만들었다.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 나 역시 성취감을 맛본 것은 물론이다. 아이와 어떤 역경도 헤쳐나갈 수 있겠다는 자신감까지 얻었다. 내가 직접 운전을 한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아들에 대해서 만큼은 최적의 ‘운전’을 했다는 생각에 나홀로 운전대를 잡았던 때보다 더 기뻤다.
어린 아이들과 대중교통 수단을 이용하는 일이 결코 만만한 일은 아니다. 체력 소모는 기본이고, 챙겨야 할 짐은 상당하다. 다른 사람들에게 고개를 숙여 연신 이해를 구하는 일(더불어 사는 사회이기 때문에)쯤은 각오해야 한다.
하지만 그만큼 엄마로서 보람차고, 육아에 자신감을 갖게 하며 무엇보다 아이가 더 넓은 세상구경을 통해 ‘폭풍 성장’을 하는 게 보여 자꾸자꾸 도전하게 만든다. 나 같은 경우 아이와의 기차 여행이 그렇다.
아들 녀석은 지난해 3월 태어난 이후 지금까지 기차를 10번 정도 타 여행 시 어떤 교통수단 보다 기차를 많이 이용했다. 모두 친정과 서울 집을 오가기 위해서였다. 서울에서부터 친정인 순천까지의 거리는 약 326km. 용산역에서 KTX를 타면 2시40분 가량 걸린다.
첫 탑승 때에는 장난감, 이불, 분유통, 기저귀 등등 아이가 놀거나 이용하는 데 익숙한 물품들을 죄다 챙겨갔다. 그 바람에 어깨가 끊어질 뻔했다. 8~10kg의 아이를 아기띠에 맨 채 양 손에 가득 짐을 들고 땀을 비오듯 흘리며 기차를 타는 모습이란 그야말로 나에 대한 ‘지못미(지켜주지 못해 미안해)’.
그러나 막상 친정에 가면, 아이는 또 다른 미지의 세계에 대한 호기심에 평소 놀던 장난감에는 별 흥미를 느끼지 않았다. 무겁게 들고 간 분유통도 몇 번 먹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분유를 뗄 때쯤 되니 더더욱 그랬다. 챙겨간 짐들을 잃어버리고 오는 경우마저 생기다보니 괜히 가져갔다는 후회만 들었다.
몇 번의 시행착오를 겪은 후 난 분유나 기저귀를 비롯한 아이 먹을 것 등을 대부분 ‘현지 조달’했다. 없으면, 깜박 했으면 겁먹을 필요없이 다시 사거나 아이에게 새로운 자극도 줄 겸 대체물을 찾으면 된다. 좁은 기차 안에서 아이에 치이는 것도 모자라 짐에 치이고 이로 인해 옆, 뒤, 앞 좌석의 승객들에게 민폐를 끼치는 것보다는 낫다. 짐을 미리 택배로 부치는 방법 역시 추천한다. 기차 안에서 필요한 최소한의 물품만 들고 타면 아이도, 엄마도 훨씬 편하기 때문이다.
콤팩트한 짐을 가지고 아이와 기차를 탄 나는 앞 뒤 옆 좌석 승객들을 일단 잘 살펴본다. 특히 옆 좌석 승객에게는 먼저 “어디까지 가세요?”라고 말을 부친다. 아이를 낳기 전에는 한번도 해보지 않은 행동이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아이로 인해 시끄러울 수 있으니 양해를 부탁드린다는 말을 하기 위해 자연스럽게 말을 부치는 일은 꼭 필요하다. 이 때 함께 내미는 시원한 음료수나 맛있는 과자는 대화의 물꼬를 트는데 좋은 윤활유가 된다.
그래서 아이에 호의적인 분들을 만나면 그야말로 ‘땡큐’. 짐을 꺼내는 동안 나 대신 아이를 안아주기도 하고, ‘까꿍 까꿍’ 관심만 보여줘도 여행길은 한결 편해지기 때문이다. 한번은 옆 좌석에 탄 여대생과 뒷 좌석에 앉은 초등학교 4,5학년 연년생 자매를 둔 엄마가 내 아들에게 관심을 많이 보였고, 같이 놀아주기까지 해 아주 편하게 여행을 한 적이 있다.
컨디션이 좋았던 아이는 이 누나 저 누나의 손을 잡고 노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앞 좌석에 탄 네살배기 아이까지 합류하니 더욱 화기애애했다. 엄마 이외에 다른 사람들과 이렇게 잘 놀다니! 남자 아이라 그런지 누나들을 무척 좋아했다. 오가는 승객들도, 승무원들도 아이들의 웃음소리에 한번씩 관심을 보였고, 그럴수록 아이들은 더욱 신나했다.
하지만 모든 승객이 아이에게 호의적일 순 없다. 사실 나 역시 아이를 낳기 전에는 기차 안에서 보채거나, 우는 아이를 보면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인상을 찌푸렸으니까. 10번의 기차를 타고 여행하는 동안 내게 직접 조용히 좀 해 달라거나, 아니면 승무원을 통해 조용히 해 줄 것을 부탁받은 경우가 몇 번 있었다. ‘일부러 애를 울린 것도 아닌데...’ 라며 야속했지만 더불어 사는 사회에서 당연히 필요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자 조심하게 됐다.
그래서 나는 아이가 조금이라도 떼를 쓰거나 울 기미를 보이면 기차 통로로 나간다. 때문에 2시간 40분 여행길 중 1시간 가량은 그렇게 자리에 앉지 못한 채 밖에서 보내기 일쑤다. 몸은 비록 힘들지만 조용한 열차 안과 달리 아이와 소리내 놀 수 있는 통로가 훨씬 마음 편한 게 사실이다.
게다가 통로에는 아이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의외의 장난감들(?)이 많다. 음료 자판기나 간이 의자, 보관돼 있는 승객들의 캐리어, 선반과 기차 운행에 필요한 여러 장비들이 그렇다. 한창 손을 뻗어 만져보려 하고, 올라타 보려고 하는 아이에게 이런 장난감들은 지루하지 않게 시간을 보내는데 참 유용하다.
아이가 걸음마를 시작할 시기가 되면 아이의 두뇌는 어른 두뇌의 4분의 3에 해당하는 1.6kg 정도의 크기로 성장한다고 한다. 태어나서 2년 동안 아기는 흡수 능력이 매우 뛰어나 난이도에 상관없이 주어지는 교육적 자극을 그대로 받아들인다. 그런 의미에서 기차 안 통로를 오가는 다양한 사람들과 사물을 관찰할 수 있는 기회는 아이에게 훌륭한 자극이 될 수 있다.
차창 밖 풍경을 동영상으로 찍는 일도 아이와 함께 할 수 있는 놀이이자 좋은 자극제다. 기차가 앞으로 내달리며 휙휙 지나가는 주변 풍경을 신기해하는 아이에게 동영상을 찍으며 이런 저런 얘기를 들려줄 수 있다. 나중에 이렇게 찍은 영상을 함께 보며 기차 여행을 곱씹어 보는 것도 기차 여행을 하는 재미다.
10번 정도 기차를 타보니 장거리 여행에 기차만큼 아이와 내게 편한 게 없다. KTX는 특히 이동 시간을 크게 줄여줘 어린 아이와 여행을 생각하는 엄마들에게 추천할 만하다.
물론 아쉬운 점은 있다. 많은 KTX에서 기저귀 교환대가 있는 화장실이 너무나 좁다는 점이다. 아이가 7~8개월만 넘어도 머리와 다리가 벽에 닿을 정도로 기저귀 교환대의 길이가 짧고 폭도 좁은 편이다. 게다가 성인 한 사람이 서 있기조차 불편한 공간에 기저귀 교환대가 같이 있다보니 기저귀를 갈려는 엄마와 아이 모두 벽에 이리쿵 저리쿵 하기 쉽다.
또 대부분의 기저귀 교환대가 아이를 눕혔을 때 발 부분에서 기저귀를 갈게끔 디자인돼 있는 것과 달리 기차 안에서는 그만큼의 공간 확보가 어려운 탓이겠지만, 아이의 몸 옆 부분에서 갈도록 돼 있어 이리저리 움직이는 아이의 팔다리를 붙잡고 기저귀를 갈아야 하는 엄마들에게는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특히 많은 엄마들이 불편함을 호소하는 것은 수유실. 역시나 좁디 좁은 공간에 냉난방 시설까지 갖추지 않고 있어 엄마들 사이 원성이 높다. 30도 가까이 되는 이런 무더운 여름 날씨에는 아예 수유실 이용을 하지 않는 편이 낫다. 우는 아이 달래려고 분유를 먹이려던 엄마, 또 배가 고파서 분유를 먹으려던 아이 모두 땀 범벅이 된 채 더 피곤하고, 짜증만 날테니 말이다. 차라리 옆 사람에게 양해를 구하고, 열차 내에서 먹이는 게 편하다.
이같은 점을 제외하고선 어린 아이와 첫 여행을 준비하는 엄마들에게 기차는 좋은 추억을 선사할 수 있다. 이동시 머리의 흔들림이 적어야하는 갓난 아기일수록 기차는 안전한 교통수단이 될 수 있다.
아이에게 이제 “할머니 할아버지 보러 가자”라고 말하면 ‘칙칙
[디지털뉴스국 방영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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