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날린 '반구대 암각화' 보존대책…또 허송세월 보내나
↑ 반구대 암각화/사진=MBN |
혈세 28억원을 들여 3년간 추진된 가변형 임시 물막이(카이네틱 댐) 사업이 실패로 끝나면서 국보 제285호인 울산 반구대 암각화의 보존대책이 또다시 표류할 위기에 처했습니다.
반구대 암각화 보존 문제를 담당하는 정책기관인 문화재청과 울산시의 갈등이 재현돼 선사시대의 생활상이 남아 있는 귀중한 문화유산인 반구대 암각화의 훼손을 방치하고 허송세월할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도 제기됩니다.
문화재청이 지난 21일 문화재위원회 심의를 거쳐 사업 중단을 선언한 임시 물막이안은 암각화 앞을 흐르는 대곡천 수위조절안을 내세운 문화재청과 임시제방 축조안을 주장한 울산시가 10년 가까이 의견 대립을 벌인 끝에 지난 2013년 두 기관과 국무조정실, 문화체육관광부가 업무협약을 맺으면서 절충안으로 도입됐습니다.
이 안은 반구대 암각화의 항구적 보존대책을 찾기 전까지 암각화 앞에 설치와 해체가 가능한 길이 55m, 너비 16∼18m, 높이 16m의 거대한 옹벽을 세운다는 것으로, 초기부터 자연경관의 훼손에 대한 우려와 안전성과 실효성 등으로 거센 논란에 휘말렸습니다.
그러나 대학원생의 아이디어를 참고해 임시 물막이를 제안한 함인선 포스코A&C 수석기술고문은 기술적 문제에 대해 자신감을 표했고, 정부는 실현 불가능한 방안이라는 수리 전문가들의 지적에도 치밀한 검증 없이 사업을 밀어붙였습니다.
당시 변영섭 문화재청장은 10년간 반구대 암각화 보존운동을 펼치며 수위조절안을 고수해온 이력에도 불구하고 정치권의 설득과 압박, 울산시의 격렬한 반대로 인해 임시제방 축조안과 흡사한 임시 물막이안을 받아들였습니다.
이에 대해 문화재 전문가들은 표심을 의식한 정치인들의 욕심과 정권 초기에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갈등 조정 선례를 만들어내야 한다는 조바심이 낳은 '굴욕적 결과'라고 비판했지만, 임시 물막이안을 막지는 못했습니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26일 "임시 물막이 사업은 반구대 암각화를 보존하기 위한 최선의 방안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나온 것"이라며 "실패가 확정된 만큼 원점에서 보존대책을 논의할 수밖에 없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임시 물막이안이 백지화된 뒤 울산시는 3년 전과 마찬가지로 임시제방과 비슷한 생태제방 축조안을 들고 나왔고, 문화재청은 생태제방 축조안을 비롯해 수위조절안 등을 두루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하지만 울산시가 식수 부족을 이유로 반구대 암각화 하류에 있는 사연댐의 수위를 낮출 수 없다고 강하게 버티고 있는 상황에서 문화재청이 현실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방안은 생태제방 축조안뿐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입니다.
생태제방 축조안은 암각화 앞쪽 80m 지점에 길이 440m, 높이 15m, 너비 6m의 둑을 쌓아 물이 암각화로 흘러가지 못하도록 하고, 제방 근처에 관람객을 위한 교량을 설치한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생태제방 축조안 역시 임시 물막이안처럼 대규모 토목공사를 벌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이와 유사한 임시제방 축조안은 이미 2009년과 2011년 문화재위원회에 상정됐다 부결된 바 있습니다.
일단 문화재청은 유네스코 자문기구인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 이코모스) 전문가를 9월께 초청해 생태제방 축조시 암각화 주변 환경에 미칠 영향과 세계유산 등재 가능성에 대해 들어볼 방침입니다.
그러나 이 경우 암각화의 세계유산 등재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이코모스 한국위원회 관계자는 "외국에 있는 전문가가 반구대 암각화를 조사할 예정이라는 이야기는 들었다"면서도 "생태제방이 건설되면 반구대 암각화의 세계유산 등재는 물 건너간다고 봐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 관계자는 "최근 유네스코는 등재 대상 유산은 물론 주변 경관까지 모두 살피기 때문에 암각화 앞에 세워질 거대한 인공물을 좋게 평가하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한 뒤 "울산시가 반구대 암각화를 세계유산으로 등재해야 한다고 외치면서도 생태제방 축조안을 포기하지 않는 것은 이율배반"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이 같은 상황에서 문화재 전문가들은 생태제방 축조안을 추진하면 결국 문화재청과 울산시가 불협화음만 일으키다 임시 물막이안처럼 아까운 시간과 혈세만 낭비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습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교수는 "정부가 보존대책을 찾는 동안 반구대 암각화의 훼손 정도는 심해지고 있다"며 "암각화를 잘 보존하고 세계유산 등재까지
이 교수는 "국무조정실이 국토교통부, 울산시와 협의해 울산의 식수 문제를 해결해 준다면 수위조절을 실행할 수 있다"면서 "정치가 반구대 암각화를 훼손했다고 하지만, 암각화를 지킬 수 있는 것도 정치"라고 덧붙였습니다.
[MBN 뉴스센터 / mbnreporter01@mb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