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3년, 고려 성종 때 일입니다.
당시 동아시아 최강국이었던 거란은 장수 소손녕을 내세워 고려를 위협했습니다.
-거란 장수 소손녕
"거란의 80만 군사가 고려에 도착했다. 만일 항복하지 않으면 섬멸할 것이니, 국왕과 신하들은 빨리 우리 군영 앞에 와서 항복하라."
송과의 관계를 끊고 거란을 섬기라는 뜻이었죠. 건국 75년 만에 최대 위기를 맞은 고려는 서희를 협상가로 보냅니다.
'항복'이냐, '화친'이냐….
서희의 답은 뭐였을까요?
-고려 외교가 서희
"고려·거란이 교류하지 못하는 것은 압록강이 막혀서인데, 여진이 그 곳을 점거하고 있으니… 만일 여진을 내쫓고 길을 통하게 한다면 어찌 국교가 통하지 않겠는가."
항복도 화친도 아닌 '제 3의 길'을 제시한 서희. 이로써 고려는 거란에 사대의 예를 하는 대신 강동 6주를 얻어 국토를 압록강까지 넓히게 됩니다. 거란 역시 송을 견제할 수 있게 됐죠.
한반도 사드 배치를 둘러싸고 중국은 한국을 비판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북한과의 교류를 강화하고 있습니다. 앞서 보셨듯 아세안지역안보포럼에선 '신뢰 훼손'을 언급하며 사드 배치 철회에 관한 직접적인 언급을 하기도 했죠.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추신지불 전초제근, 풀을 뽑아 없애려면 그 뿌리를 뽑아야 한다'고 답했습니다. 결국 북한 핵미사일이 원인이니 중국도 도와 달라, 양국이 여러 도전에 직면할 수 있지만 서로의 관계에 영향을 받지 않도록 잘 극복하자고 말입니다.
사드를 배치해야할 만큼 긴급 상황인 한국의 외교수장이 굉장히 '여유로워' 보이지요.
지난해 3월, 중국이 우리나라한테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에 가입하라고 압박을 하고, 미국은 사드를 배치하라고 압박할 때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이렇게 말했었습니다.
-윤병세 / 외교부 장관 (지난해 3월 30일, 재외공관장 회의)
"우리의 전략적 가치를 통해 마음으로부터 미·중 양측으로부터 러브콜을 받는 상황이 결코 골칫거리나 딜레마가 될 수가 없습니다. 굳이 말한다면 이것은 축복이 될 수도 있습니다."
결국 우린 양국의 요구를 다 들어줬습니다. 그렇지만 외교적 상황이나 한-미-중의 역학관계는 개선된 것이 없어 보이지요.
윤 장관은 지금도 이 상황이 '축복'이라 생각하고 있을까요?
레이더 탐지거리가 중국까지는 도달하지 않으며 중국 감시용이 아니라는 주장을 중국이 받아들이지 않고 있는 만큼 논리로 중국을 진정시키기 어렵다면 그에 따른 구체적 외교안이 있어야 합니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외교관으로 칭송받는 서희….
지금 한국엔 그와 같은 혜안을 가진 인물·외교력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어디 그런 분 안 계실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