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조선해양 비리 의혹을 수사 중인 대검찰청 부패범죄특별수사단(단장 김기동 검사장)은 26일 "3년의 고재호 전 대표(61) 재임 기간(2012년 3월~2015년 3월)에 모두 5조4000억원(순자산 기준) 규모의 회계 사기(분식회계)가 벌어졌다"고 밝혔다. 이는 25일 사기 대출 혐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 등으로 구속한 김 전 부사장(61) 수사를 통해 확인됐다.
그는 고 전 대표 때 최고재무책임자(CFO)였다. 검찰은 "고 전 대표의 전임자인 남상태 전 대표(66) 재임 기간(2006년 3월~2012년 3월)의 회계 사기 혐의도 수사 중이지만 아직 전체 사기 규모를 말하기엔 이르다"고 말했다. 남 전 사장은 배임수재 등 개인 비리 혐의의 피의자 신분으로 27일 소환 조사를 받는다. 그는 이번 수사에서 소환되는 전직 최고위 인사다.
◆ 경영진 주도 회계 사기
성과급을 위해 부실을 숨기고 회계를 조작한 배임·횡령과 사기 범행에 경영진이 예외 없이 적극적으로 공모했다는 것이 수사 초반 밝혀진 총체적 비리의 배경이다. 특수단 관계자는 이날 "지금까지 조사받은 재무·회계 담당 직원들 대부분이 성과급이나 경영진 평가를 좌우하는 목표 실적을 맞추기 위해 대규모의 조직적 회계 사기가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고 밝혔다.
배나 플랜트를 만드는 데 들어갈 것으로 예상되는 돈(예정 원가)을 마음대로 줄여서 수주한 뒤 이를 통해 직접 매출액과 영업이익을 과대·과다 계상했다는 것이 회계 사기의 핵심이다. 고질적 회계 사기 혐의 구조는 크게 네 단계로 드러났다. △저가·출혈 수주로 단기 매출 거짓 확대 △회계 사기로 영업이익 높게 조작 △높은 매출과 영업이익으로 성과급 배임 △영업이익 조작 탓에 반영 못한 비용은 다른 프로젝트로 떠넘기기의 범죄 구조가 수년간 반복된 것이다.
예를 들어 1조원 규모의 배 제작을 예정 원가와 같은 8000억원에 저가·출혈 수주한 뒤 회계장부에는 예정 원가가 7000억원이라고 축소해 적는다. 이익이 전혀 남지 않은 프로젝트를 계약해놓고 회계를 조작해 영업이익이 나는 것처럼 속이는 것이다.
◆ '분식회계' 아니라 '회계 사기'
특수단은 이날 지금까지 일상적으로 사용해온 '분식회계'라는 표현 대신 '회계 사기'라는 표현으로 고쳐 써야 한다고 제안했다. 대출을 받기 위해, 회사채나 기업어음을 팔기 위해, 주식투자를 하기 위해, 성과급을 받기 위해 사기를 저질렀다는 게 이번 사건의 본질이라는 얘기다.
특수단 관계자는 이날 "회계는 자본주의의 기본이 되는 약속이라 이 약속이 무너지면 자본주의가 유지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기업 구조가 복잡해지고 규모가 커지면 투자자나 금융기관은 기업이 내놓는 재무제표 등 회계자료에 거짓이 없다는 점을 전제로 투자나 대출 등 경제활동을 할 수밖에 없는데 회계에서 사기를 저지르면 경제활동 전반이 무너진다는 얘기다. 이 관계자는 이어 "공기업인 대우조선해양에서 조직적인 대규모 회계 사기가 있었다는 건 심각하고 중대한 문제"라고 밝혔다.
대우조선해양의 회계 사기 규모와 구조와 드러나면서 산업은행에 대한 본격 수사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다. 이와 관련해 특수단 관계자는 이날 '산업은행은 피해자인가'라는 취재진 질문에 직접적인 답변은 피하면서도 "산업은행은 대출과 관련해서는 피해자"라고 말했다. 조만간 산업은행 관계자들도 회계 사기와 성과급 배임 등 혐의와 관련해 수사를 받을 수 있다는 점을 암시한 것으로 풀이된다.
◆ 남상태 개인 비리 혐의도 수사
남 전 사장은 납품·수주·하도급 등을 대가로 협력·하도급 업체로부터 뒷돈을 챙긴 혐의(배임수재)를 받고 있다. 첫 번째 의혹은 대학
[이현정 기자 / 김세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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