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브렉시트가 결정된 이후 서울 명동 사설환전소에는 엔화 사재기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김호영 기자> |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브렉시트) 쇼크는 국내 실물경제에도 직격탄이 되고 있다. 브렉시트가 결정된 후 달러·엔화 값이 급등하면서 서울 명동 사설환전소 일대에 벌써부터 엔화 사재기 조짐이 일고 있다. 인근 종로 귀금속 상가는 대표적 안전자산인 골드바 등 금 제품을 사들이려는 문의가 부쩍 늘었다.
여름 휴가철을 맞아 미국과 일본 여행을 계획한 시민들은 환율시장 요동 상황에 따라 여행계획을 전면 재조정하게 생겼다. 자녀를 해외에 둔 기러기 아빠들은 벌써부터 “환율충격에서 버티려면 씀씀이를 줄여야할 판”이라고 긴장하고 있어 가뜩이나 침체된 내수에 부정적 시그널을 예고하고 있다.
브렉시트의 충격은 26일 서울 명동 일대 환전시장에서 그대로 목격됐다. 엔고 급등에 놀라 지난 주말 엔화 환전을 하기 위해 발길을 옮긴 김영순 씨(47·여·)는 B환전소 앞에 적힌 ‘100엔=1145.7원’을 보고 혀를 내둘렀다. 지난주까지 100엔 당 1000원대 환율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이틀 사이에 60원 이상이 급등하면서 7월 오사카 여행 계획에 비상이 걸렸다.
B환전소를 운영 중인 박 씨는 “환전하러 오시는 분들마다 환율표를 보고는 다들 볼멘소리를 낸다”며 “엔은 더 오를 것으로 전망 돼 미리 사두라고 조언을 해주고 있다”고 말했다. 박 씨 역시 주말 사이 환전객들이 몰려올 것을 생각해 평소보다 엔, 달러 등 외환 보유액을 50%가량 늘려 대비하고 있지만 역부족이란 전언이다.
이날 일부 명동 환전소에서는 추가 엔화 값 상승을 기대한 ‘엔화 사재기’ 움직임이 뚜렷이 감지됐다. C환전소를 운영하는 이 모씨는 A환전소처럼 “당분간 엔화는 매입만 가능하다”고 잘라말했다. 이 씨는 “지금 시장 흐름에서 보면 엔화를 계속 쌓아서 은행에 되팔면 더 큰 수익이 난다. 우리 뿐 아니라 주변 환전소에서도 엔화 대량거래를 꺼려하는 눈치”라고 귀띔했다.
실제로 1만~2만 엔 정도의 소액 거래는 쉽게 성사 됐지만 명동 환전상 서너 곳에서는 10만 엔 이상 거래를 “지금 팔 수 있는 엔화가 없다”는 이유로 거절하고 있었다.
브렉시트 여파로 대표적인 안전자산으로 꼽히는 금값이 크게 뛰면서 국내 귀금속 소매시장도 바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날 귀금속 도·소매 매장들이 밀집해 있는 종로 귀금속 거리의 매장들에는 평소보다 훨씬 많은 금 매입·매도 문의가 이어졌다.
귀금속 거리 한가운데 위치한 귀금속매장 데미안의 류대희 대표는 “금을 매입하기 위해 매장을 방문한 손님들이 평소 주말대비 10% 정도 늘어났다”며 “그저께부터 금값이 갑자기 오르면서 100여통의 문의전화가 쇄도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10~20돈 짜리 골드바 가격을 문의한 사람들이 대부분이지만 100돈 짜리 금괴 과격을 문의한 사람도 있었다”고 말했다.
본격적인 여름 휴가철을 앞두고 브렉시트 충격이 터져나오면서 미국·일본 여행을 계획했던 직장인들은 ‘영국의 저주’라는 성토를 할만큼 유탄을 맞게 됐다.
7월 중순 처가 식구들과 일본 여행을 준비한 직장인 서 모씨(32)는 “엔화 폭등 움직임에 멘붕 상태”라며 “엔화가 계속 강세를 보인다면 처가 어른들 비용까지 모두 감당하려던 계획에 차질이 생길 것 같다”고 발을 굴렀다.
미국·일본에 가족을 두고 온 기러기아빠들은 특히 ‘악소리’가 날 지경이다. 대기업을 다니는 기러기아빠 유모 씨(48)의 경우 6년간 일본에서 주재원 생활을 하다 올해 3월 입국했다. 그러나 고교 2학년생인 아들이 일본에서 축구를 한다고 해서 애 엄마와 함께 일본에 남겨두고 와 지금까지 매달 일본에 55만엔(원화 600만원 상당)을 송금하고 있다. 유 씨는 “한 달 전 부터는 700만원을 들고 환전하러 가도 돈이 모자라던데 브렉시트 여파로 엔화가 초강세 국면에 들어간 것 같아 걱정이 태산”이라며 “나도 그렇고 일본 현지 가족들도 지출 씀씀이를 확 줄여야할 것 같다”고 말했다.
딸이 2년 째 미국의 한 아트스쿨에 재학 중이라는 직장인 오모 씨(59)는 “환율이 오른다고 타지에서 꿈을 키우고 있는 딸을 다시 한국으로 불러올 수도 없지 않느냐”고 답답함을 호소했다.
그는 “딸이 다니는 아트스쿨 학비가 연간 4만 달러가 넘는 고액이라 환율이 조금만 올라도 부담이 된다”며 “브렉시트가 결정되고 앞으로 탈퇴에 대한 협상이 시작되면, 미국 달러 환율은 더 오를 수밖에 없는 것 아니냐”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한편 브렉시트발 충격 속에서도 명동 일대 상인들은 급격한 엔화 변동성이 그간 움츠렸던 일본인 대상 상점
[연규욱 기자 / 유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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