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첫 '표지갈이' 사건, 대학교수들 무죄 판결 논란
↑ 표지갈이/사진=연합뉴스 |
대학교수들의 도덕 불감증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이른바 '표지갈이' 사건에 대한 첫 판결이 15일 나왔습니다.
기소된 대학교수 79명 중 10명을 대상으로 처음 열린 재판에서 각각 벌금형이 선고됐지만 일부 교수의 저작권법 위반 혐의가 무죄로 판단돼 논란이 예상됩니다.
앞서 검찰은 남의 책 표지만 바꿔 자신의 저서로 출간하거나 이를 묵인한 전국 110개 대학 교수 179명과 출판사 임직원 5명 등 184명을 적발, 이 가운데 79명을 정식 재판에 넘기고 나머지 105명을 벌금 300만∼1천만원에 약식기소했습니다.
대학교수가 무더기로 적발된 초유의 사건이기도 합니다.
법원은 이날 저작권법 위반과 업무방해 혐의로 정식 재판에 넘겨진 교수 79명 가운데 10명에 대해 벌금 1천만∼1천500만원을 판결하면서 4명의 저작권법 위반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재판부는 이 같은 판단을 하면서 저작권법과 공표권의 관계를 살폈습니다.
저작권법 제137조는 저작자가 아닌 자를 저작자로 해 실명·이명을 표시, 저작물을 '공표'한 행위를 처벌하도록 정하고 있습니다.
공표는 저작물을 공연, 공중송신, 전시 등의 방법으로 공개하는 경우와 저작물을 발행하는 경우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이 규정만 보면 저작물 공개는 공표에 해당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재판부는 저작물을 '최초'로 공개하는 경우만 '공표'에 해당한다며 최초에 의미를 뒀습니다. 저작자는 저작물을 공표하거나 공표하지 않을 권리인 '공표권'을 가지는데 한번 공개된 저작물은 이미 공표된 것이어서 공표권이 인정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에 따라 재판부는 이번 판결에서 표지갈이한 책 가운데 최초로 발행된 책에 이름만 끼워 넣어 똑같이 발행한 행위는 저작권법 위반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습니다.
검찰은 이번 판결에 반발하고 나섰습니다.
재판부의 논리대로라면 이미 발행된 책의 내용은 그대로 두고 저자 이름만 바꿔 발행해도 저작권법에 저촉되지 않는다는 해석이 가능해지기 때문입니다. 또 한번 공연된 연극을 다른 극단이 그대로 공연해도 저작권법으로 처벌할 수 없다는 의미로도 받아들여질 수 있습니다.
검찰 관계자는 "이번 사건은 저작자의 권리를 보호하는 저작권법의 취지를 더 살펴야 한다"며 "'최초'에만 의미를 두면 이 법이 악용돼 저작자의 권리가 침해될 가능성이 크다"고 반박했습니다.
이 관계자는 "판결문을 검토한 뒤 항소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며 "사상 초유의 사건이다 보니 다툴 쟁점이 많아 대법원의 판단을 받는 것도 의미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초유의 사건에 재판부의 고민도 적지 않았습니다. 양형 이유를 밝히면서 이례적으로 1940년대 나치의 안락사 정책에 용기 있게 반대해 현재까지 존경받는 독일의 교수 단체인 '백장미단'을 소개했습니다.
재판부는 "대학이 지성의 상징이듯 대학에서 학생을 가르치는 교수는 지성을 낳는 자이자 사표(師表)"라고 전제한 뒤 "그러나 법정에 선 교수들은 자신이 쓰지도 않은 책을 출간하고 자신의 연구업적으로 보고했다"고 비판했습니다.
이어 "표지갈이 행태는 학계와 출판업계에 폭넓게 자리 잡은 것으로 추정된다"며 "징역형을 선고하는 것은 범행, 관행, 위법
그러면서도 "이들 교수의 행위는 어떠한 말로도 변명할 수 없으며 설령 법리적인 이유 등으로 일부 무죄가 선고됐다 해도 그 도덕적인 책임에서는 자유로울 수 없다"고 일침을 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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