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매일경제 보도로 조명된 국민대통합위원회의 ‘한국형 사회갈등 실태진단’ 보고서는 여론의 지대한 관심과 공감을 얻으며 대안 마련 등 사회적 과제를 던졌다. 전 세대에 걸쳐 이어지는 경쟁구도는 피로를 넘어 ‘탈진’으로, 빈부격차가 가져오는 분노는 ‘원한’의 감정으로 악화되고 있다는 게 보고서의 경고다. 그러면서 자칫 극단적 갈등 양상이 한국 사회의 기반까지 흔들 수 있다고 염려했다.
연구를 의뢰한 국민대통합위의 한광옥 위원장(74) 역시 “사회 현실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하다. 어두운 면을 제대로 보지 않고서는 제대로 된 진단과 처방을 할 수 없다”며 갈등 보고서가 우리 사회에 던지는 과제가 만만치 않다고 말한다. 한때 정당 대표를 역임한 정계 거목으로 한국 사회의 비약적 발전을 입법·행정부에서 목도한 그는 “1960년대 이후 한국 경제의 압축성장이 지금 압축적 갈등표출로 나타나고 있다”며 “여기에서 부정적이고 파괴적인 갈등이 나타나는 부분을 타깃으로 전방위 개혁을 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연구진이 대안으로 제시한 노동시장의 반(半)정규직 도입 등 경제 부문의 개혁 과제에 대해서도 그는 깊은 공감을 하면서 “무엇보다 기업과 사회지도층이 솔선수범해 더 많은 나눔과 법치존중의 모습을 보여야 서로를 불신하는 계층 갈등이 치유될 수 있다”고 호소했다. 한 위원장은 “국민들이 지나친 패배주의에 빠지지 않고 갈등을 풀어나갈 수 있도록 대통합위가 마중물이 될 것”이라며 “사회의 어두운 면을 용기 있게 조명하고 지혜의 목소리를 내준 매일경제 보도에 감사를 드린다”고 말했다.
-대통합위 갈등보고서가 공개되면서 사회적 관심이 뜨겁다.
▶공감한다. 수 많은 댓글을 보면서 사회 갈등의 정확한 모습을 파악하고 생산적인 담론과 대화, 소통을 갈구하는 국민적 여론이 크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런 가려운 부분을 매일경제가 시원하게 긁어줬다고 생각한다. 갈등은 국가 정책결정의 속도와 질을 떨어뜨려 그 효과를 반감시킨다. 이로 인해 불필요한 거래비용이 발생하면 그 피해는 국민과 기업에 돌아간다. 기업 역시 사회갈등이 구성원 간 소통과 협력의 효과를 떨어뜨려 혁신을 저해하는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
-심화하는 계층·세대 갈등의 근본 원인이 무엇이라고 보나.
▶단연 경제다. 지금 우리 사회는 1960년대 이후 압축 성장 과정에서 풀지 못한 갈등이 압축적으로 폭발해 그 세기가 더욱 강하다.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강하다고 할 수 있다. 경제 발전 과정에서 쌓인 부조리와 불만들이 제때 해결되지 못했다는 점이 아쉽다. 대통합위에서 조사를 해보면 계층 간 갈등이 가장 큰 문제다. 바로 양극화다. ‘개천에서 용이 나는’ 사회에 대해 젊은이들의 실망감이 크다. 한번 부를 쌓으면 세습적으로 내려가면서 양극화는 더욱 심해진다. 특히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기업 구조조정 등으로 인해 두터웠던 중산층이 취약해진 상황이다. 이러한 경제 환경이 우리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대통합위에서도 보다 심층적으로 분석하려고 한다.
-이를 두고 청년세대는 ‘금수저·흙수저’ ‘헬조선’ 등으로 절망감을 표출하는데.
▶그런 용어들이 나올 수 있다. 하지만 중요한 건 양극화가 극복해야 할 대상이지 이로 인해 우리 사회가 절망적 심리에 매몰돼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삶이 각박하다고 해서 정신적 빈곤에 빠지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해방이후 어려운 상황 속에서 우리는 6·25 참변을 겪고 고도 성장을 이루며 외환위기를 극복했다. 우리의 뛰어난 DNA는 충분히 갈등을 어려운 환경을 극복할 수 있다. 갈등 자체를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지금 정부에서도 일자리 창출과 경제활성화, 4대 개혁을 강도 높게 진행하고 있다. 이런 노력도 청년들에게 희망을 주는 데 가시적인 성과로 이어질 수 있다. .
-어려운 경제 상황과 함께 갈등을 심화시키는 중요한 원인이 있다면.
▶‘공유지의 비극’으로 표현되는 이기주의가 문제다. 생물학자 게럿 하딘이 말하는 공유지의 비극에서 개인의 이기주의는 집단적인 비극을 초래하게 된다. 소에게 더 이상 먹일 풀이 없는 공유지의 황폐화는 우리 사회의 자기이익 추구와 닿아 있다. 내 이익만 챙기려 하면 공동체가 무너지고 사회 전체가 망가질 수밖에 없다. 갈등 해결을 위해 정부도 최선의 노력을 하겠지만 정부의 힘만으로는 절대 불가능하다. 개인이 이기주의를 버리고 시민사회와 지역공동체, 기업 등이 ‘협치’를 할 수 있는 구도로 가야 최고의 효과를 볼 수 있다.
-보고서 해법이 반(半)정규직 도입 등 제한적이다. 보다 근본적인 접근이 필요하지 않나.
▶오랜 정치생활을 하면서 입법부는 물론 행정부와 청와대에도 있었다. 건전한 갈등은 사회 발전의 동력이 되지만 문제는 부정적이고 파괴적인 갈등이다. 이는 긍정적 기능을 키워서 부정적인 면을 제어하는 식으로 가야 한다. 부정적인 면만 보면 발전이 없다. 지금 우리 사회의 현안인 노동개혁과 함께 복지·교육 등 다른 정책 문제들도 이 같은 방식으로 풀어가야 한다. 1998년 초대 노사정위원회 위원장으로 대타협을 이뤄냈다. 당시 노사가 한목소리를 내면서 우리 경제가 국제사회에서 신뢰를 얻고 조기에 위기를 극복하는 계기가 됐다. 갈등을 단계적으로 푸는 것도 중요하다. 한꺼번에 다 해결할 수 없다. 작은 것들이 모여서 통합이 되고 갈등을 해결할 수 있다.
-사회지도층의 모럴해저드로 유발되는 사회 갈등도 만만치 않다.
▶페이스북 창업자인 저커버그가 딸을 낳고 미래세대를 위해 천문학적인 기부 약정을 했다. 우리 사회지도층과 기업이 생각해봐야 할 대목이다. 사회지도층의 솔선수범이 있어야 계층 간 갈등과 경제적 격차를 함께 해소할 수 있다. 돈 있는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기부를 하는 것은 소득 재분배 차원에서도 중요한 일이다. 기업은 국민의 소비활동 등 사회적 영양분을 먹고 성장한다. 그 이익을 사회에 환원하는 성숙한 선순환의 구조가 필요하다. 무엇보다 약속을 잘 지켜야 한다. 노블레스 오블리제라는 말처럼 사회지도층부터 법과 규범, 약속을 제대로 지켜야 믿음과 신뢰의 문화가 쌓일 수 있다.
-불신과 이념갈등을 조장하는 정치권도 대수술이 필요한데.
▶특정 사안이 발생하면 이를 정국 대립의 구도로 이끌고 정파적으로 악용하는 게 우리 정치권의 현주소다. 국민의 의식 수준이 높아지고 국가적 민주화 수준도 크게 올라갔지만 정치권만은 과거의 구태를 못 벗어나는 듯해 안타깝다. 정치권에서 파생되는 갈등과 대립에 국민들이 피로감을 느끼면서 갈등해결의 주체가 돼야 할 국회가 신뢰를 받지 못하고 오히려 국민 통합까지 가로막고 있다. 나도 정치인 출신이지만 무엇이든 정파적 대결로 몰고 가려는 구습을 버리고 건전한 정책경쟁을 추구하는 게 가장 시급하다. 다가오는 총선도 선거를 전후해 지역을 분열시켜 사회갈등을 가중시키는 악습이 반복돼서는 안 된다. 국민과 언론의 관심과 감시가 정치권의 구습을 바꿀 수 있다.
-대통합위의 역할은.
▶바닷물이 잔잔한 것 같아도 그 아래에서는 힘차게 물이 돌고 있다. 우리 사회에 어두운 면도 있지만 빛이 되는 생활 속 영웅들도 정말 많다. 생활 속 소영웅들을 발굴하고 우리 사회에 힘을 주는 것도 대통
[대담 = 박기효 사회부장 / 정리 = 김희래 기자 / 사진 = 이승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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