앱 하나로 왕따를 막을 수 있을까? 답을 뻔히 알면서도, 이런 생각을 한 사람들이 궁금했다. 고등학생들이 소셜벤처를 만들었다기에, 더 관심이 갔다. 회사명은 갑론을박. ‘갑이 논했을 때 을이 반박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자’의 줄임말이란다. 갑론을박의 CEO 이환인, 앱 개발 기술책임 김지우, 디자인 디렉터 송건, 홍보 마케팅 총괄 안여린 씨를 만났다. CEO의 말부터 들어봤다.
“열정과 고생할 각오가 있다면, 고등학생 때 창업을 해보라고 권하고 싶어요. 왕따방지 채팅 앱 ‘라온(LA on ‘즐거운’이라는 순 우리말)’으로 소셜벤처대회에서 장관상을 받았는데요. 그 수상자 자격으로 기업인-투자자 모임에 갔었거든요. 고등학생이라고 하니까 관심도 많이 가져주시고 설명도 오래 들어주시더라고요. 확실한 차별화포인트가 되는 것 같았습니다.”
다른 세 사람도 ‘좋은 경험이 될 것’이라며 동의했다. 안 씨는 “학업과 병행하는 게 쉽지 않았지만, 학생이었기 때문에 이런 착안을 할 수 있었다. 베타 테스터 공개 후 친구들이 공감해줬을 때 가장 기뻤다”며 웃었다. 송 씨는 “대회에서 선보일 파워포인트 수십 장을 준비하느라, 소풍날 에버랜드에서 종일 PPT를 만들었던 게 가장 기억에 남는다”며 “스마트폰에서 직접 앱을 구동해봤는데, 제가 디자인한 것들이 실제로 구현되니까 신기했다”고 회고했다.
이들이 만든 ‘라온’ 앱은 랜덤채팅과 마니또 기능으로 구성됐다. 같은 반 학생들이 정보를 등록하면, 랜덤으로 이어진 두 사람이 익명으로 채팅을 하게 된다. 대화가 길고 오래갈수록 인센티브(마일리지, 코인 개념)가 쌓이고, 랜덤 퀴즈 창이 떴을 때 상대에 대한 정보를 맞추면 또 인센티브가 쌓인다. 앱 개발을 맡았던 김 씨는 “전문 개발자가 아니어서 채팅기능을 구현하는 게 어려웠고, 욕설 방지 필터 등을 만드느라 스트레스가 많았다”면서도 “잘못된 첫인상이나 색안경을 끼게 되기 전에 그 애에 대해 알게 하고 싶어서 몇 달 간 코딩에 매달렸는데 그만큼 보람도 컸다”고 말했다.
라온은 현재 앱 개발 전문가에게 컨설팅을 받으며 제휴처를 찾고 있다. 안 씨는 “채팅을 해서 받은 인센티브로 학생들이 좋아하는 물건들을 살 수 있게 할 생각”이라며 “텐바이텐 등 디자인 쇼핑몰에 마케팅 제휴 제안서를 보내고 답변을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이 씨는 라온의 마니또 기능을 강조했다.
“브레인스토밍 과정에서 왕따문제에 관한 신문기사들을 많이 읽었습니다. 실제 피해자를 인터뷰하기도 했구요. 저희가 진짜 원하는 건 온라인 관계가 오프라인으로 확장되는 거에요. 마니또 기능은 친구들을 ‘관찰’하게 만듭니다. 테스트 결과 ‘교우관계가 늘었다’ ‘모르던 친구들과 인사를 하게 됐다’는 답변이 많았는데요. 정확히 저희가 의도했던 거였습니다.”
네 사람은 모두 청심 국제고등학교 학생들이다. 이 씨는 올해 졸업후 하버드와 스탠포드, 코넬대 등 미국 대학에 지원해 합격통지서를 기다리고 있고, 나머지 세 사람은 고3이 됐다. 꿈을 물었더니 당찬 대답들이 한참 이어졌다.
경영 전공을 준비중인 이 씨는 “정주영 회장처럼 재치있고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CEO를 꿈꾼다”며 ‘포브스 300대 부자’가 되고 싶다고했다. 최근에는 전북대 교수인 아버지에게 제안해 코넬대 호텔경영대학 교재를 함께 번역하기도 했다. 코딩하느라 고생했던 김 씨는 응용물리학자가 꿈이라며 무인자동차가 도입될 경우 교통정체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연구중이라고 했다. 신뢰감을 주는 블루와 연두색으로 앱을 디자인한 송 씨는 진화생물학과 생체모방공학을 전공하려고 한다. 어렸을 때부터 수생생물을 좋아했고, 지금은 버들붕어의 호흡기관과 트리웜(tree worm)을 연구중이다. 홍보마케팅 책임자 안 씨는 역사학도가 되고 싶다. 사회적 약자들의 역사에 대해 연구하고 싶단다. 미국 헌법을 공부 중인데, 존 로크와 홉스의 이론 중 어느 것이 더 큰 영향력을 끼쳤
[신찬옥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