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고향땅에서 한 번만 아우들 볼을 쓰다듬어 보고 죽고싶다는 생각을 수도 없이 해”
1947년 소련군 진주와 함께 평안북도 구성군에 있던 정든 고향집을 등진 실향민 김구현씨(89). 그는 요즘처럼 남북 관계가 얼어붙을 때면 TV뉴스만 봐도 가슴이 철렁한다. 북에 남겨두고 온 가족들 걱정 때문이다. 8형제 가운데 남쪽으로 내려온 것은 장남인 김씨 뿐.
김씨는 “나이가 들수록 고향에 가고 싶다는 마음은 커져만 간다”며 울먹였다. 그는 “매번 찾아오는 남북 갈등 상황에 실향민들에겐 피로감만 쌓이고 있다”면서도 “통일은 벼락같이 찾아올 것”이라며 실낱같은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1945년 38선이 생기면서 파주 장단군을 떠나 남쪽에 자리잡은 실향민 윤이령씨(80) 역시 가슴 아프기는 매한가지다. 8살 터울의 형과 헤어진 지 70년이 넘게 지났지만 생사조차 모른다. 그는 “1993년 세상을 떠난 어머니도 매년 38선에 찾아가 형님과 고향을 그리며 눈물을 흘렸다”며 “통일이 되면 어머니를 꼭 고향땅에 모시고 싶다”며 눈시울을 적셨다.
윤씨는 “2000년도에 이산가족 상봉을 신청한 12만9000여명 중, 가족을 만난 건 고작 2000명”이라며 “남북관계가 악화되면 그런 일회성 만남의 가능성조차 사라질 것 같아 두렵다”고 한숨을 쉬었다. 그는 “남북 갈등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북한 정권과 우리나라 정치인들을 생각하면 분노가 치민다”며 분통을 터뜨뜨렸다.
10년전 스무살 젊은 나이에 홀홀단신 중국으로 탈북해 한국에 온 강민씨(30)는 이제 어엿한 쇼핑몰을 차려 행복하게 살고 있다. 하지만 요즘처럼 북한 이슈가 첨예하게 부각될 때면 동포들 걱정에 일손이 손에 잡히지 않는 강씨다. 그는 “북한 정권이 잘못했다는 사실은 분명하지만, 강경책을 펼 때마다 고통받는 것은 결국 북한의 일반 주민들”이라며 “국제사회 제재가 시작되면 북한 정권은 주민에게 고통을 고스란히 전가할 것”이라며 안타까워 했다.
이들은 정부가 나서서 실향민과 북한 주민들을 위한 진심 어린 정책을 펴달라고 입을 모았다. 김씨는 “정치인들에게 표가 안되는 이산가족 문제는 완전히 뒷전”이라며 “지금이라도 인권 보장 차원에서 이산가족 문제와
[백상경 기자 / 강영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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