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무중에 스마트폰에 낯선 전화번호가 찍혔다. 받을까 말까 고민하다가 전화를 받으니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한 남성이 나에게 말을 한다.
“저는 수원지검의 오**수사관 입니다. 지금 본인 명의로 대포통장을 만든 범인이 잡혔는데 지금 범인이 이**씨와 돈을 주고 정당한 거래를 하셨다고 주장하고 있어서 조사가 필요합니다”
처음엔 피식 웃음이 나왔다. 내 이름으로 대포통장을 만들었다는 그 사람. 난 평생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구미 출신의 40대 초반의 남자였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모른다고 하면 간단히 끝날 줄 알았다. 정말 별 거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상황을 들어보니 심각하다. 내 명의로 된 대포통장이 해외명품 쇼핑몰 구매에 이용됐으며 피해액도 피해자도 어마어마한 규모였기 때문이다. 몇 년전 가보지도 않은 해외 공항에서 신용카드가 불법 결제된 경험이 있는 터라 복잡한 생각이 머릿속을 오갔다. 오 수사관에 따르면 결국에 내가 일당인지 아닌지, 즉 피해자인지 가해자인지 확인이 필요하다는 거다. 순간 ‘어, 이거 좀 심각한데...’하는 생각과 ‘보이스피싱 냄새가 나는데...’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동시에 오갔다. 결국 예상대로 그들은 진화된 보이스피싱 일당이었다.
보이스피싱이 날로 진화된다는 건 하루 이틀 이야기가 아니다. 이제 그들은 더 이상 중국인 교포의 목소리도 기계음도 쓰지 않는다. 대놓고 은행 계좌번호와 비밀번호를 알려달라고 하지도 않는다. 그들도 기업이 물건을 팔 때 중요한 마케팅 수단인 ‘스토리’를 도입하고 있는 것이다. 어떤 물건을 사고자 하는 결정을 내린 소비자는 그 스토리가 나와 맞닿는 지점에 있기 때문이다. 보이스피싱도 바로 이런 방식으로 진화하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이 피해자가 됐을때 적극 방어하고 벗어나고 하는 본능이 있다. 이런 전화를 집에 혼자 있는 노인이나 부녀자들이 받았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다시 031로 시작하는 그 번호에 전화를 걸어봤다. 그들은 여전히 ‘수원지검’이라며 전화를 받는다. 이 곳이 경기도에 위치한 그저 작은 ‘사무실’ 이라는 건 참 쉽게 밝혀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실 그 어느 기관도 선제대응은 하지 않는다. 이유는 간단하다. 아직 ‘금전적 피해’가 발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직까지 보이
[이윤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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