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가 내 다리를 의도적으로 몰래 찍었더라도, 당시 레깅스를 신고 있었다면 이 행위를 ‘무죄’로 볼 수도 있다.
최근 대법원은 길에서 본 여성을 엘리베이터 안까지 쫓아가 가슴부위만 몰래 촬영한 남성에 대해 무죄 판결을 내렸다. 사진 속 여성의 옷차림에 노출이 없었고 특정 신체부위가 강조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성폭력처벌법 규정상 몰카 범죄는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다른 사람의 신체를 촬영한 경우’로 정의된다.
그러나 대법원은 피해자가 느낀 수치심보다 사진의 객관적 특성에 중점을 뒀다.
피해자는 법정에서 “사진을 보고 수치스럽고 무서웠다. 또 내 몸만 촬영한 것은 분명 성적인 느낌을 가지고 촬영한 것으로 본다”라고 말했지만 대법은 “촬영한 사진이 여성의 얼굴은 찍지 않고 가슴 부위만 찍은 것이기는 하나, 피해자가 노출이 없는 옷을 입고 있었고 특별히 가슴이 부각된 것도 아니므로 일반적인 관점에서 보았을 때 성적 욕망을 불러일으키거나 성적수치심을 유발한 것으로 볼 수 없다”고 무죄 판결의 이유를 설명했다.
하지만 노영희 한국여성변호사회 변호사는 대법원의 해당 판시는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노 변호사는 이 판시의 중점이라 볼 수 있는 ‘성적 욕망을 불러 일으키거나 성적수치심을 유발 한다’라는 구성요건은 원칙적으로 주관적이라며, “법원이 해당 구성요건의 문언을 지나치게 좁고 자의적으로 해석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노변호사는 이어 “어떤 여성이든 낯선 남성이 엘리베이터 까지 쫓아와 밀폐된 공간에서 자신의 신체를 카메라로 찍는다면 당연히 성적 수치심을 느낄 수 밖에 없다”라며 “특히 여성의 가슴이나 성기, 다리 등은 일반적으로 성적 욕망의 대상으로 알려져 있는데, 오로지 가슴만 찍은 피고의 행위는 피해여성을 성적욕망의 대상으로 본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히며 해당 판시에 대해 유감을 표했다.
또 노변호사는 “해당 법의 제정 취지 중 하나는 ‘함부로 촬영 당하지 않을 권리 보호’도 있는 것인데 이 같이 입법 취지를 생각하지 않은 판결은 ‘맘대로 찍어갈 권리가 있다’는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고도 전했다.
입법 취지보다 ‘사진의 객관성’에 중점을 둔 법원의 판결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11월 서울 북부지법에서는 ‘
또 지난 2014년 5월 서울중앙지법은 치마 입은 여성을 32건 몰래 촬영한 남성에 대해 ‘짧은 치마’가 찍힌 단 한 장만 유죄로 인정하기도 했다.
[디지털뉴스국 김수민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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