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경험을 쌓는다고는 하지만 자기 돈을 써가며 일을 하는 건 좀 아니지 않나요.” 서울 동대문구의 한 사립대에 재학 중인 김모 씨(24)는 인턴 모집 공고를 확인하다가 분통을 터뜨렸다. 올해부터 최저시급이 6030원으로 올랐으나 상당수 기업들이 인턴에게 최저임금은 커녕 아예 무급으로 과중한 업무를 시키려한다는 사실만 확인했기 때문이다. 그는 “아무리 그래도 경력을 쌓는 것이 다급한 청년들의 궁박한 현실을 너무 이용하려는 게 아닌지 원망스러웠다”고 깊은 한숨을 쉬었다.
연초부터 인턴을 고용하면서 최저시급에 못 미치는 돈을 지급하는 기업들이 인턴 구직자들의 원성을 사고 있다. 상당수 사업장들이 인턴을 활용해 상당한 고용비용 절감 효과를 누리면서도 교육·경험을 전수한다며 최저임금에 훨씬 못 미치는 안 되는 열악한 보수를 제공한다는 것. 정부와 새누리당도 상황의 심각성을 인식해 26일 국회에서 임금 체불 대책 협의회를 열고 저임금 인턴 고용을 근절하기 위한 가이드라인을 마련키로 했다.
정부와 새누리당은 일을 가르친다는 빌미로 노동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으면 무조건 처벌하기로 하고, 관계기관이 함께 구체적 처벌규정을 내놓기로 했다. 교육·훈련을 받는 인턴과 실제 업무를 하는 근로자이 구분 기준도 제시해 부당한 인턴 고용 사례를 방지할 방침이다. 또 인턴의 연장 야간 휴일 근무를 금지하고 근로교육을 6개월 이내로 제한하기로 했다.
정부는 새 가이드라인을 통해 열정을 빌미로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주지 않는다는 의미의 ‘열정페이’, 휴지처럼 한 번 쓰고 버린다는 ‘티슈 인턴’ 문제를 바로 잡을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인턴 구직자들은 고용노동부의 현행 ‘청년취업인턴제 시행지침’조차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며 더욱 강력한 대책을 요구하고 있다. 기존 지침은 인턴에게 최저임금(시급 6030원·월급 126만원)의 110%인 월 139만원 이상을 지급하도록 ‘권장’하고 있으나, 현실은 이와 거리가 멀다.
매일경제가 최근 올라온 주요 인턴 모집공고를 확인한 결과 중소기업은 물론 대기업조차 정부 시행지침에 현저히 미달되는 지급조건을 내걸고 있었다.
화재·생명보험·증권업이 주력인 국내 A그룹의 경우 계열사 광고를 담당하는 광고팀이 올해 상반기 인턴 사원을 모집하면서 내건 조건은 월 급여 90만원에 불과했다. 주된 업무는 광고 기획과 촬영, 광고제작 전 과정을 보조하는 것으로 4년제 대학생만 지원 가능하다. 근무시간은 주 5일로 오전 8시30분부터 오후 6시30분까지로 정규직에 버금간다.
B글로벌투자센터 역시 인턴 모집 공고에 영어로 리포팅이 가능한 수준을 요구하면서 월급은 80만원만 제시했다. 오전 8시30분부터 오후 5시30분까지 근무하며 채용 과정에서 영문이력서와 영문자기소개서는 물론 영한·한영 번역쓰기 시험까지 요구했다.
C기업 사회공헌추진단은 △국내외 홍보 △행사기획 △발표자료 작성 등의 고난도 업무를 요하는 인턴을 모집하면서 오전 9시~오후5시30분 근무에 보수가 월 100만원에 불과했다.
인턴 구직자인 박모 씨(26·중앙대)는 “일차적으로 최저임금도 주지 않는 기업들도 문제지만 학생들도 이런 기업에 지원하지 않아야 하는데 인턴 구하기 급급하다 보니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지원하는 경우가 많다”며 “인턴 경력을 위해 학생들이 울며 겨자먹기로 일할 수 밖에 없는 약점을 파고든 것”이라고 비판했다. 한국노동연구원은 최근 보고서에서 “입법 사각지대의 허점을 이용해 인턴에 대한 보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교육기관과 사용주들이 청년들의 절박함이 실무역량, 사회경력, 열정을 빌미로 한 노동착취로 이어져서는 안되는 것을 자각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지난해 8월 기준 최저임금을 받지 못
미국은 6개 지침으로 인턴과 근로자를 명확히 구분하며 인턴을 보호하고 있다. 이들 지침에 따르면 인턴제는 ‘교육훈련’ 목적과 성격이 있어야 하며, 인턴에게 이득이 되어야 하며, 정규직 근로자의 일자리를 대체해서는 안된다.
[정슬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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