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방배동 서래초등학교 뒤편 ‘사이길’에 들어선 형형색색의 공방에는 언제나 공예가들의 바쁜 손놀림으로 활력이 넘친다. 향수, 가죽, 종이조명, 포장 등 공방의 종류도 다양하다. 사이길은 도로명 주소 ‘방배로 42길’에서 유래된 이름. 프랑스 생마르텡 운하의 예술거리를 연상시키는 500m 남짓 되는 작은 거리에는 37개의 공방과 카페, 갤러리가 오밀조밀 모여 있다. 이곳에 위치한 자기공방 ‘세라워크(CERAWORK)’의 이수진 대표(36·여)는 “회사에 다니다 취미로 자기 디자인을 배워 사이길에 자리잡게 됐다”며 “현재는 10여명의 수강생이 창업을 목표로 수업을 듣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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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방배로 42길에 위치한 ‘세라워크’를 운영하는 크리슈머 이수진씨 <이승환 기자> |
최근 골목길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는 공방 창업이 인기를 끌고 있다. 서울 홍대, 서촌, 방배동 등지를 중심으로 공방거리가 활성화되고 있다. 공방은 가죽공예, 베이킹, 수제가구 등 자신이 필요한 제품을 직접 만들고 이를 위한 기술을 배울 수 있는 공간을 말한다. 남승진 제일기획 광고기획팀장은 “디지털로 연결된 사회에서는 생산과 소비, 온·오프라인의 경계가 흐릿해지면서 새로운 삶의 양식이 생겨나기 때문에 공방창업과 같은 이머징 마켓이 생겨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취미활동이 돈벌이로도 이어질 수 있다는 기대감에 공방에서 기술을 배우는 이들도 늘었다. 최근 1년 새 매출액이 300%이상 성장했다는 가죽공예 ‘홍스공방’의 홍찬욱 대표(39)는 “올해 5명의 교육생을 뽑는데 80명이 지원했다. 작년에 비해 두배 이상 늘어난 것”이라며 뜨거운 인기를 전했다. 꽃꽂이 공방에서 취미반 강좌를 수강중인 직장인 김 모씨(27·여)는 “당장 창업할 여력은 없지만 요즘처럼 직장생활도 불안정한 시대에는 좋아하는 기술을 배워두는게 보험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공방의 진화는 정보통신 발달과 맥을 함께한다. 유통이 쉬워지면서 공방은 과거 가내수공업에서 지금은 틈새시장을 노리는 O2O(Online to Offline) 비즈니스로 각광받고 있다. 올해 초 베이킹 공방을 창업한 김민지 씨(27)는 “온라인으로 주문받고 마케팅 활동까지 가능하기 때문에 작은 공방도 입소문을 타면 승산이 있다고 생각했다”고 창업 계기를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공방창업가들을 ‘프로슈머(Prosumer)’의 진화형인 ‘크리슈머(Creative+Consumer)’의 등장이라고 설명한다. 프로슈머는 생산자(Producer)와 소비자(Consumer)의 합성어로 제품개발, 유통과정에 참여하는 ‘생산적 소비자’를 뜻한다. 반면 크리슈머들은 직접 ‘생산자’ 역할을 하며 생산자·소비자, 온·오프라인의 경계를 적극적으로 허무는 ‘창조적 소비자’를 말한다. 장대련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는 “공방은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잇는 O2O 비즈니스의 좋은 사례”라며 “개인이 연결성을 확보해 유통까지 할 수 있는 기반이 갖춰졌기 때문에 공방 창업가와 같이 ‘생산자’에 가까운 크리슈머의 시대가 도래했다”고 분석했다. 이들을 떠오르는 ‘취향공동체’로 보는 시각도 있다. 김난도 서울대 소비자아동학부 교수는 “공예에 흥미가 있는 사람들이 모여 교육을 받고 창업해 공방 거리 등이 생겨난다면 그 역시 취향공동체의 한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김 교수와 서울자 소비트렌드분석센터는 지난 10일 내년 10대 소비 트렌드 키워드 중 하나로 취향공동체를 꼽았다.
공방창업에 너도나도 뛰어드는 상황에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최철용 한국창업&프랜차이즈 연구원장은 “수익성과 기술에 대한 철저한 조사가 선행돼야 한다”며 “시간 투자와 ‘장인정신’이 필요한 분야”라고 조언했다. 김병관 아주대 사회학과
[황순민 기자 / 김희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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