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천경자 화백의 '미인도'를 위조했다고 진술한 고서화 전문위조범을 수사한 전직 검사가 이 작품이 "위조된 게 맞다고 본다"는 개인 의견을 밝혔습니다.
최순용 변호사는 28일 저녁 서울 경운동 수운회관 4층에서 사단법인 한국문화유산아카데미 고미술문화대학이 주최한 고미술품 감정교육에서 '문화재보호법과 형사 문제'를 주제로 한 강연을 통해 당시 상황을 구체적으로 설명했습니다.
서울지검 등에서 10여 년간 검사로 근무했다는 최 변호사는 문화재 분야를 주로 수사했으며 현재 행복마루 법률사무소에서 일한다고 주최 측은 소개했습니다.
최 변호사는 "그 사건은 제가 수사했다"고 말을 꺼낸 뒤 고서화 전문위조 혐의로 검거된 권모(당시 52)씨가 구속되고 나서 어느 날 "드릴 말씀이 있다"고 하더니 "국립현대미술관에 걸려 있는 천 화백의 그림을 자신이 그렸다고 해 반신반의하다가 진술을 받았다"고 사건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미인도 위작 논란은 1991년 국립현대미술관이 소장한 천 화백의 작품에 대해 작가가 직접 위작 의혹을 제기하면서 시작됐습니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이때 진품이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러나 1999년 고서화 위작 및 사기판매 사건으로 구속된 권씨가 검찰 수사 과정에서 "화랑을 하는 친구 요청에 따라 소액을 받고 달력 그림 몇 개를 섞어서 '미인도'를 만들었다"고 말하면서 위작 시비가 재연됐습니다.
최 변호사는 당시 "권씨를 구속했을 땐 (논란이) 다 잠잠해진 상황인데 나한테 그런 얘기를 하더라"며 "이 사람 눈빛을 보면 거짓말은 아닌 것 같았다"고 말했습니다.
최 변호사는 자신에게 그러한 얘기를 하는 이유를 물었고 권씨는 "너무나 양심의 가책을 느껴 천 화백에게 정말 사죄하고 싶고 해서 검사님한테 털어놓는 것"이라고 했다고 합니다.
최 변호사는 "그 사람 나름대로 꿍꿍이속이 있었겠지"라면서도 "사실을 털어놓음으로써 (검찰이) 구형을 적게 하고 뭐 그런 게 아닌가 싶긴 하지만 워낙 형량이 낮아서 구형(3년)은 다 했다"고 말했습니다.
진술의 중요성을 감안해 상부에 보고하자 "한쪽에선 국민적 의혹이 있는 사건이니까 진상을 규명하라 하고 다른 쪽은 공소시효가 지났는데 의혹만 부풀릴 수 있고 결론도 못 내린 걸 왜 하냐, 그래서 결론은 (관련 수사를) 안 하기로 하고, 진술이 있었다는 팩트는 발표하기로 했다"고 최 변호사는 전했습니다.
최 변호사는 "지금도 그 결정이 맞다고 생각하고 존중한다"고 말했습니다.
최 변호사는 당시 국립현대미술관으로부터 천 화백의 미인도를 임의 제출받아 검찰청으로 가져오던 도중 이러한 결론이 내려져 수사관이 미술관에 작품을 다시 돌려주고 왔다고 전했습니다.
당시 언론에는 검찰이 권씨의 진술에 신빙성이 없어 확인 수사를 벌이지 않았으며, 국립현대미술관도 앞뒤가 맞지 않는 위조범의 얘기에 경거망동할 필요가 없다는 입장인 것으로 보도됐습니다.
권씨가 미인도를 위작한 시기는 1984년이지만 미인도를 소장 중인 국립현대미술관의 입수 시점은 1980년이어서 진술의 신빙성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최 변호사는 "최소한 내 개인 생각은 그때 권씨의 태도나 진술, 그 사람의 실력으로 봐선 거짓말은 아닌 것 같다"면서 "좀 더 구체적인 사실은 감정 결과에 따라 밝혀지겠지만…"이라고
그는 당시 천 화백과 통화를 시도했지만, 딸로부터 멕시코 스케치 여행 중이라는 대답을 들어 직접 통화는 하지 못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결론적으로 얘기하면 저는 작가 본인의 말을 믿는다"며 "이것은 위조된 게 맞다고 본다"고 강연을 마무리했습니다.
이날 오후 6시부터 2시간 동안 진행된 강연에는 수강생 60여명이 참석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