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행정고시 출신이라도 호치키스를 찍는데 있어야 승진 우선순위 대상이 되고 유학, 해외파견까지 우대받는데 누가 그 자리에 가기를 마다하겠습니까.”
모 경제부처 서기관급 공무원의 말이다.
호치키스 찍는 과란 이른바 ‘주무과(課)’를 뜻한다. 주무과란 각 국실에 선임 과(課)로 아래에 있는 과들에서 수립하는 정책들을 모아 종합판을 만드는 일을 한다. 문서를 취합해 호치키스를 찍는 일이 많다보니 생긴 공직 사회의 은어다. 전문성은 안중에도 없고 무조건 승진에 목을 메는 공직사회 현실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각 부처의 경제정책을 조정해야 해서 ‘왕(王) 호치키스’라고 불리는 기획재정부 정책조정국장은 2011년~2012년 초까지 9개월 새 3번이나 교체돼 구설수에 올랐다.
기상청은 기상관측장비 리스료 예산편성과 집행 과정에서 부적정하게 운영한 점이 2012년 감사원 감사에서 적발됐다. 2011년, 2012년 과다 편성한 뒤 남는 예산을 편성 목적에 위배되는 분야에 집행한 것. 감사원은 기상청이 2011년에는 필요액보다 12억원을 과다청구한 것으로 봤다. 2개연도 예산편성시 담당 사무관이 4번이나 교체돼 업무의 인수인계가 원활치 못해 발생한 일로 지적됐다.
매일경제는 인사혁신처의 협조를 받아 지난해 자리를 옮긴 중앙행정기관 일반직 공무원의 직전 부서 재직기간 현황을 조사했다. 이번 조사 결과 이른바 ‘파워부처’ 일수록 자리교체 가 더 심한 것으로 나타났다.
현행 공무원임용령에 따르면 예외적인 사유에 해당되지 않는 한 5급 이하 사무관은 2년 이내 자리를 옮길 수 없다. 그러나 국무조정실, 기획재정부, 금융위원회, 대검찰청 등 4개 중앙행정기관은 5급 이하 공무원의 평균 재직 기간이 1년~1년 6개월 미만에 그쳤다. 5급 이하 공무원의 평균 재직기간이 1년 6개월~2년 미만으로 규정을 위배한 중앙행정기관은 18개에 달했다. 공정거래위원회, 국세청, 교육부, 미래창조과학부, 국토교통부, 산업통상자원부, 식품의약품안전처, 병무청, 관세청 등 주로 힘센 부처들이 이 그룹에 속했다. 5급 사무관의 경우 2년의 인사이동 제한기간을 어긴 비율은 72.8%에 달했다.
고위공무원은 1년 이내 자리를 옮길 수 없다. 그러나 법무부, 대검찰청, 국방부, 관세청, 농식품부, 권익위원회, 보훈처, 문화재청 등 8개 중앙행정기관은 평균 재직기간이 1년을 밑돌았다. 고위공무원과 3~4급 간부들의 평균 재직 기간이 2년을 넘는 부처는 하나도 없었다.
이른바 ‘전보제한규정’이 사문화된 것은 각 부처가 공무원임용령의 예외규정을 악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른바 ‘13호 예외 규정’이다. 공무원임용령 45조는 직급별로 일정 기간동안 인사 이동을 제한하고 있지만 13호에서는 ‘그 밖에 기관장이 보직관리상 특히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경우’라는 예외 사유를 두고 있다.
이렇게 잦은 인사이동은 업무 연속성을 떨어뜨리고 비효율을 야기시킨다.
한국행정문제연구소가 행정자치부의 용역을 받아 연구한 결과 보고서에 따르면 팀장·과장급 교체시 하나의 정책을 입안해 시행되기까지 소요시간이 504.4일(내부 소요시간 442.9일, 공식채택시간 103.5일)로 추산됐다. 이는 교체가 없을 때 소요시간 267.2일(내부 소요시간 239.4일, 공식채택시간 29.3일)의 2배에 달하는 기간이다. 보고서는 중앙행정기관의 탐장과 과장은 정책의 중간관리 역할을 하기 때문에 잦은 교체는 적정한 관리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밖에 없다며 신중한 인사관리 필요성을 주문했다.
삼성에서 30년 이상 인사관리업무를 담당했던 이근면 인사혁신처장은 대안으로 ‘와이(Y)자형 인사관리제도’ 도입을 강조했다.
이근면 처장은 “특정 분야 전문성을 쌓아가는 전문형 공무원과 전문 분야 내에서 유사업무를 섭렵하고 관리자로 성장하는 관리형으로 구분한 Y자형 인사관리제도 도입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정부는 전문형을 택한 공무원에게 관리형을 택한 공무원에 상응하는 대우를 해주는 안을 고려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 만으로 전
[박용범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