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지난 21일 오후 지하철 2호선. 임산부 임 모씨(30)는 지하철 내에 마련된 임산부 전용 좌석에 앉으려다 단념했다. 밝은 분홍색으로 표시된 좌석이 유독 도드라져 막상 앉으려니 주변 시선이 집중되는 것이 부담스러웠다.
임씨는 “교통약자석이 따로 있음에도 임산부 좌석이라고 거기에 앉아 자리 하나를 뺏는 느낌이 불편했다”며 “교통약자석 자체가 임산부를 배려한 자리인지라 평소처럼 거기에 앉았다”고 했다.
#2. 지난 20일 오후 강남 고속터미널 여성 전용 흡연구역. 엄연히 여성들을 위한 흡연 공간이지만 남성 흡연자들만 북적였다. 인근 커피전문점에서 일하는 김 모씨(20·여)는 “시설의 취지는 공감하지만 주변 시선을 오히려 집중시키는 역효과가 있다”며 “흡연 여성들 대부분은 인근 자판기 뒷편에서나 삼삼오오 모여 담배를 피운다”고 말했다.
여성 배려 차원에서 우후죽순처럼 들어서고 있는 ‘여성 전용 공간’ 일부가 ‘양성 평등’ 취지를 제대로 살리지 못해 여성들에게도 호응을 얻지 못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여성들의 실질적인 수요를 고려하지 않고 만들어지는 여성 전용 공간의 상당수가 ‘전시 행정 성격’이 다분한 탓이다. 또한 정부 기관과 민간 업체의 자의적인 판단으로 만들어지는 경우도 많아 예산낭비 등 부작용마저 예상된다.
서울시가 지난 8월초부터 지하철 2·5호선에 설치하고 있는 ‘임산부 전용 좌석’이 대표적이다. 임산부가 전용 좌석에 마음 편히 앉도록 하겠다는 취지지만 정작 임산부들은 “부담스럽다”는 반응이다. 서울시는 지하철 2호선 1668석, 5호선 1216석을 목표로 임산부 전용좌석을 설치중이다. 여기에 들어가는 예산만 4억6000여만원이다.
여성 전용 흡연장도 마찬가지다.
‘여성 전용’이라는 수식어를 붙였지만, 사실상 남녀 구분 없이 사용되거나 여성들이 기피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인천시가 유동인구가 많은 백화점 앞에 설치한 남성·여성 전용 흡연부스에 대해 회사원 김 모씨(27·여)는 “여성 배려와 양성 평등을 고민한다면 출산, 육아 등의 실질적인 문제에 집중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여성 전용 주차 구역을 바라보는 시선도 긍정적이진 않다.
다른 주차구역이 꽉 차도 이 구역만 비어있는 경우가 상당할 정도로 여성들 수요는 적다.
회사원 정 모씨(34·여)는 “여성이 주차를 잘 못한다는 편견에 일조할 것 같아 쓰지 않는다”고 말했다. 다른 회사원 김 모씨(28·여)도 “전용 주차장을 이용하면, 주차능력이 낮다는 걸 시인하는 것처럼 느껴져 일부러라도 일반 구역에 주차한다”고 했다.
이미정 한국여성권익연구센터 센터장은 “공급자가 아닌, 수요자 중심에서 바라봐야 실질적
허라금 이화여대 여성학과 교수는 “여성을 배려한 공간은 세심한 연구를 바탕으로 당사자인 여성의 수요에 맞추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며 “이와 동시에 사회적 인식을 개선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병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시균 기자 / 오찬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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