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사건에 공소시효 적용을 배제하는 이른바 ‘태완이법’이 국회 통과를 앞두고 있다.
태완이법은 1999년 대구에서 황산 테러로 49일 만에 숨진 사건의 피해자 김태완(당시 6세)의 이름을 딴 법으로 모든 살인 범죄에 대한 공소시효를 없애는 내용이 골자다.
태완이법은 지난 21일 국회 법사위 소위를 통과했고 앞으로 법사위 전체 회의와 국회 본회의를 거쳐 태완이법이 확정되면 살인죄의 공소시효는 전면 폐지된다. 하지만 소급 적용이 되지 않기 때문에 이전에 발생한 사건은 적용대상이 되지 않는다. 이에 따라 2000년대 초반에 발생한 살인 미제사건들은 조만간 공소시효가 만료될 상황이다.
태완이법의 적용을 받지 못하고 영구 미제 사건이 될 처지에 놓인 공소시효 임박 사건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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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2월 4일 전라남도 나주시 남평읍 드들강 유역에서 17살 여고생 박 모양이 피살당한채 발견된 사건이다. 발견 당시 박 양은 성폭행 당한 채 알몸으로 강에 빠져 숨져 있었다. 목이 졸린 흔적은 있었지만 사인은 익사였다. 박 양의 주검에서는 범인의 것으로 추정되는 정액도 나왔다. 하지만 박 양의 시신에서 나온 체액의 DNA와 일치하는 용의자는 찾지 못한 채 장기 미제 사건으로 남았다.
그러다 사건 발생 11년 후인 2012년 이 DNA와 일치하는 남성을 찾았다. 그는 이미 다른 사건으로 무기수로 복역 중이던 김 모씨다. 하지만 그는 합의하에 성관계를 가졌다고 주장했고 DNA외에 다른 증거가 없어 불기소 처분을 받았다.
공소 시효 만료는 내년 2월 4일이다. 수사당국은 이 사건의 공소시효를 10년 연장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 청주 물탱크실 주부 살인 사건
2002년 6월 28일 충청북도 청주시의 한 빌라 옥상 물탱크실에서 23일 전 실종되었던 43세 주부 강 모씨의 시신이 발견된 사건이다.
실종 당일인 그해 6월 5일 당시 고등학교 1학년생이던 송 모군은 학교에서 귀가한 뒤 집에 들어와 보니 어머니가 홀연히 사라져있었다고 진술했다. 그날 저녁 5시쯤 은행에서 수차례에 걸쳐 강 모씨의 계좌에서 현금 1000만원이 인출됐다.
하지만 사건 초기 경찰은 단순 가출로 판단하고 초기 수사를 소홀히 해 여론의 질타를 받았다. 실종 이후 집안에 악취가 나기 시작해 빌라 내부를 수색하다 옥상 물탱크실에서 부패한 강씨의 시신이 나왔다. 이를 계기로 본격적인 수사가 시작됐지만 이미 시간이 상당부분 흐른 뒤라 단서를 찾지 못했다.
지난 2011년 재수사 요청 서명 운동이 벌어졌고 그해 본격적인 재수사도 시작됐지만 아직까지 뚜렷한 용의자를 특정하지 못하고 있다.
◆ 포천 여중생 살인 사건
2003년 11월 5일 경기도 포천시의 중학교 2학년 엄 모양이 하교 도중 사라졌다가 석달여 만에 시신으로 발견된 사건이다.
엄모양은 ‘곧 집에 도착한다’고 문자 메시지를 보내고 집까지 800m 정도 이어진 외진 길을 걸어가다 변을 당한 것으로 추정된다. 실종 신고가 접수된 지 23일 만에 가방, 양말 등 엄 양의 유류품이 발견됐다. 또 다시 한달 뒤에 휴대폰과 운동화를 찾았다. 그러다 사건 발생 석달여 만인 2004년 2월 3일 군부대까지 투입된 대대적인 수색 작업 끝에 엄 양의 시신을 찾게 된다. 시신의 상반신은 심하게 부패됐으나 하반신은 깨끗했다. 특별한 결박 흔적이나 외상도 없었고 성폭행 흔적도 찾지 못했다. 특이한 점은 범인이 시신의 손톱과 발톱에 붉은색 매니큐어를 칠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이 사건을 ‘매니큐어 살인사건’이라고도 부른다.
경찰의 광범위한 수사로 수명의 용의자가 수사선상에 올랐지만 진범은 아직 찾지 못했다.
◆ 대전 국민은행 강도살인 사건
2001년 12월 21일에 발생한 은행 강도 살인 사건이다. 3억원이 들어있는 돈가방 2개를 싣고 가던 현금수송차가 지하주차장에 도착할 때 사건이 발생했다. 차에는 현금출납 담당자와 청원 경찰, 운전기사가 있었다. 범인들은 현금수송차를 차로 막은 뒤 권총으로 위협하며 돈가방을 챙겨 달아났다. 이 과정에서 현금 출납 담당자가 총에 맞아 사망했다.
범행에 쓰인 권총은 38구경으로, 범행 두달 전 대전 송촌동에서 순찰하던 경찰관이 탈취당한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은 2002년 8월 6명을 용의자로 지목했지만 권총 등 직접 증거를 확보하지 못해 검거에 실패했다. 이 사건 수사는 아직도 진행형이지만 남은 공소시효는 1년 4개월 정도다.
◆ 약촌 오거리 살인 사건
2000년 8월 10일 새벽 전라북도 익산시에서 발생한 살인사건이다. 택시기사였던 피해자 유 모씨는 불상의 범인에게 흉기로 12군데를 찔렸고, 과다출혈로 사망했다. 경찰은 용의자로 사건 현장 인근에서 범인 도주를 목격한 최 모군을 피의자로 지목했고 최모군은 징역 10년을 받아 2010년 만기 출소했다.
하지만 최군이 범행 자백은 경찰관의 강압적 수사에 따른 허위진술이었다고 주장하고 나서면서 사건이 복잡해지고 있다. 사건 발생 후 3년이 지난 2003년 군산경찰서가 “진범은 최군이 아니며, 약촌오거리 살인사건의 진범은 따로 있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정식 수사를 개시해 진범이 잡히는 듯 했지만
지난달 22일 광주고등법원에서 이 사건에 대해 재심을 결정했으나, 검찰은 대법원에 항고했다. 최근 매스컴을 타면서 이 사건이 크게 알려졌지만 진범을 잡을 시간은 현실적으로 매우 짧다. 이 사건의 공소시효는 오는 8월 9월까지로 3주가 채 남지 않았다.
[매경닷컴 고득관 기자 / 김슬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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