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국민투표 반대 61%, 국민들 채권단에 '반대'한 이유는?…'역사적 감정'
↑ 그리스 국민투표 반대 61%/사진=MBN |
그리스 국민들은 국민투표에서 예상을 깨고 채권단 방안에 대한 '반대'를 택했습니다.
5일(현지시간) 국민투표의 뚜껑이 열리기 전까지 정치권과 금융 시장은 '찬성' 우세를 점쳤습니다.
그리스 국민이 긴축 프로그램에 불만을 품고 시리자(급진좌파연합) 정권을 뽑았지만, 경제적으로 궁핍한 상황에서 채권단의 추가 지원을 외면하기 힘들 것이라는 분석이었습니다.
장-클로드 융커 EU 집행위원장은 지난달 29일 "사람들은 죽음을 두려워한다고 해서 자살하지는 않는다"며 찬성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자신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예상을 저버리고 그리스 국민이 '반대'를 택한 바탕에는 경제 논리가 아니라 역사적 앙금과 채무 상환 가능성에 대한 불신이 있었습니다.
◇ 그리스-독일, 한일관계 못지않은 역사적 앙금 있어
우선 주요 채권국인 독일에 대한 역사적 앙금이 주요한 요인으로 작용한 것으로 분석됩니다.
그리스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인 1941년 1월부터 약 3년간 독일·이탈리아 등에 점령됐습니다.
독일 나치 정권 아래서 수많은 그리스 국민이 강제 징병·징용으로 희생됐고 값진 고대 유물도 약탈당했습니다.
그리스 정부가 올해 초 채무 재조정을 요청하면서 나치 피해 배상금을 요구한 것도 이 같은 맥락입니다.
그리스 정부는 나치 정권이 그리스를 점령해 피해를 입힌 대가로 독일 정부가 2천787억 유로(347조)를 배상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독일은 이미 1960년에 그리스의 요구에 따라 1억1천500만 마르크를 지불했으며 강제징용 피해자 등에 대한 개별적인 배상도 했다며 이를 거부했습니다.
이 같은 상황에서 독일이 최대 채권국으로 그리스 정책에 목소리를 내고 채무 상환 압박을 가하자 그리스 국민으로서는 채권단의 제안 자체에 반감을 품을 수밖에 없게 됐습니다.
◇ "5년 긴축에도 나아진 것은 없었다" 불신 팽배
지난 2010년 첫 구제금융을 받은 이래로 5년간 긴축 프로그램을 진행하고도 경제 사정이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는 점도 이번 '반대'의 요인으로 꼽힙니다.
2010년과 2012년 두 차례에 걸쳐 구제금융을 받은 그리스는 강도 높은 긴축정책을 시행해 정부 지출을 대폭 감축하고 세금을 인상해 240억 유로(약 29조8천억원)에 이르던 재정 적자 30억 유로 흑자로 전환했습니다.
IMF는 그리스의 긴축 정책이 '어떤 기준에 비교하더라도 이례적인 수준'이라고 평가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과도한 긴축정책으로 그리스 내부 사정은 어려워졌습니다.
최근 8년새 그리스 국내총생산(GDP)은 25% 줄었고 현재 실업률은 25%를 기록하고 있다고 가디언은 보도했습니다.
긴축 프로그램을 또 받아들인다고 해도 생활이 나아지지 않을 것이라는 불신이 사회 전반에 깔려 있었던 것으로 분석됩니다.
경제 상황이 이미 악화할 대로 악화해 지난달 정부가 자본통제에 나서 예금 출금이 막혔을 때도 예상보다 국민들의 동요는 크지 않았다고 비즈니스 인사이더는 전했습니다.
또 이번 국민투표에서 '반대'가 우세하면 채권단과의 협상에서 유리하다는 알렉시스 치프라스 총리의 설득이 국민에게 호소력을 가졌을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치프라스 총리는 투표 결과가 나온 직후 "이번에는 협상 테이블에 부채탕감 문제를 올릴 때"라며 채권단에 채무 탕감 내지는 재조정을 요구하겠다고 밝혔습니다.
◇ 채권단의 상환 압박 그리스인 자존심 건드렸나
그리스인의 자존심과 저항 의식이 이성적인 논리를 이겼다는 점을 보여준다는 분석도 나옵니다.
채권단의 긴축 정책 요구로 경제 주권을 빼앗겼고, 연일 방만한 복지정책을 한다고 비난받으면서 그리스 국민의 불만이 커졌다는 것입니다.
이번 국민투표에 참여한 바실리스(31)는 영국 더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힘든 길이 펼쳐질 것이라는 점을 안다"면서도 "우리는 (이번 투표로) 민주주의와 계몽, 혁명의 상징이 됐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는 "우리는 유럽의 게으른 느림보가 아니라 희망의 상징"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이외에도 그리스어로 반대를 뜻하는 '오히'(Oxi)가 지닌 역사적 함의도 작용했습니다.
1940년 10월28일 이탈리아의 무솔리니 정권이 그리스로 진격했을 때 이오니스 메탁사스 그
메탁사스 총리는 "그리스의 자유와 명예를 위해 싸울 시간이 왔다"며 응전태세를 갖췄고 막강한 이탈리아군을 막아냈습니다.
이후 그리스인들은 10월28일을 '오히 데이'로 기념하고 있으며 이 같은 역사적 맥락에서 치프라스 총리가 강조한 '오히'라는 단어가 영향력을 발휘했을 것이라고 허핑턴포스트는 설명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