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지난 23일 오후 서울대 관악캠퍼스 해동관. 아직 고등학생 티를 벗지 못한 풋풋한 신입생 7명이 한 자리에 모였다. 서울과 수도권 지역 의대에 합격하고도 공대를 선택한 새내기들이다.
최근 서울대 조사에 따르면 올해 이 대학 공대 정원내 모집 인원 700여명 중 의·치·한의대에 합격하고도 공대를 선택한 학생은 모두 115명에 달했다. 이 조사 결과를 두고 “1970~1990년대 인기 많았던 공대가 부활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이 조심스럽게 제기됐다.
학생들은 의대를 선택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한결같이 “정해진 길을 걷기 싫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더 많이 배우고, 사회를 알게 된 뒤 진로를 선택하고 싶다고도 했다. 이승아 씨(19·화학생명공학)는 “의대에 가면 의사가 되겠지만, 공대에 진학하면 경제, 법학 등 다양한 분야 공부를 할 수 있다는 생각에 공대를 선택했다”며 “부모님도 처음에는 의대를 가라고 했지만 제 얘기를 듣고 마음을 바꾸셨다”고 말했다.
사업 아이템을 구상한 뒤 벤처회사를 만들겠다는 학생도 있었다. 이수재 씨(20·컴퓨터공학)는 “구상해 놓은 아이템이 있다”며 “컴퓨터공학을 선택하면 많은 돈을 벌 수 있고 개인적으로 행복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심동민 씨(19·화학생명공학)는 “큰아버지가 연구자 길을 걷고 있어 영향을 받은 것 같다”며 “다행히 공대를 선택하겠다고 했을 때 부모님도 흔쾌히 허락해 주셨다”고 했다. 김효민 씨(19·컴퓨터공학)도 “다양한 경험을 통해 한 가지 길이 아닌 여러 분야로 내 진로를 열어두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대학 새내기답게 자유분방함과 패기도 가득했다. 의사라는 안정된 직업을 포기하고 예상하지 못한 위험도 감수해야 겠지만 “한번 뿐인 인생을 행복하게 만들고 싶다”는 의지가 분명했다. 이수재 씨는 “의사가 안정적일 수 있지만 위험을 안고 자유롭게 살고 싶다”고 했다. 조승찬 씨는 “결국 중요한 것은 개인의 행복”이라며 “의대와 공대 모두 어려운 길인만큼 개인이 얼마나 행복을 느끼느냐가 중요한 것 같다”고 강조했다.
이들도 안정적인 미래와 고소득 등을 이유로 여전히 많은 학생들이 의대를 선택하는 현실을 인정했다. 이들 새내기들은 “우수 학생들이 의대를 선택하는 게 잘못은 아니다”며 “하지만 적성에 상관없이 점수가 높으면 의대를 선택하게 만드는 사회가 바뀌어야 한다”고 했다. 의대를 선택해 ‘전문직’ 길을 걷게 되면 ‘갑’이 되는 건강하지 않은 사회가 더 문제라는 것이다. 권진 씨(18·화학생명공학)는 "과학고에서조차 공대와 의대를 모두 붙으면 의대를 가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신동민 씨도 “좋은 연구를 할 수 있는 친구들이 단순히 점수가 높게 나왔다는 이유로 의대를 선택하는
마침 수업 시간이 되자 모두들 약속이나 한 듯 급하게 가방을 챙겨 강의실을 찾았다. 자신이 선택한 길에 대한 ‘열정’이었다.
[원호섭 기자 / 사진 = 김호영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