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지의 대기업과 빚은 상표권 소송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한 중소기업이 같은 처지의 사업자에게 상표권 분쟁을 야기해 논란이 일고 있다.
14일 교육·유학업계 등에 따르면 미국 대형 의류업체인 '갭(GAP)'과 상표권 분쟁을 겪은 중소기업 '한국갭이어'가 지난 7일 1인 기업인 'YHS유학컨설팅' 에 내용증명을 보내 상표권 침해를 주장했다.
앞서 한국갭이어는 지난해 3월 'GAP'으로부터 'Korea Gapyear' 상호에 'GAP'이 포함된다는 이유로 상표권 침해 소송을 당했다.
당시 GAP 측 법률자문인은 국내 1위 로펌인 '김앤장'으로 한국갭이어가 이기기에는 재정적으로나 모든 면에서 힘든 상황이었다.
안시준 한국갭이어 대표는 SNS를 통해 도움을 요청했고 안타까운 사연에 변호사·변리사 등을 비롯해 PD·기자·로스쿨 재학생이 응하면서 '어벤저스'팀이 구성됐다. 이들은 댓가 없이 한국갭이어를 지원했고 집단지성의 힘으로 승소한 한국갭이어는 '한국갭이어'와 'Korea Gapyear'로 상표를 출원·등록했다.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한국갭이어가 한 자영업자를 상대로 상표권 침해를 주장하며 보상을 요구하자, 일각에서 을이 또다른 을에게 갑 행세를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특히나 한국갭이어가 대기업으로부터 제기된 상표권 분쟁으로 적지 않은 어려움을 당한 경험이 있다는 점에 비춰 비난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매출을 밝히고 손해 배상 계획을 제시하라”
한국갭이어는 YHS유학컨설팅에 "당사 홈페이지 게시물에 '갭이어' 및 'Gapyear'라는 표현을 이용하는 등 유사한 상표를 사용해 상표권을 침해했다”는 내용증명을 발송해 "즉각 사용을 중단하고 매출을 밝히고 손해 배상 계획을 제시하라”고 주장했다.
유희석 YHS유학컨설팅 대표는 "한국갭이어도 상표권으로 문제를 겪었던 기업인데 마치 당시 경험을 토대로 내용 증명을 보낸 것 같다”며 "갭이어는 국어사전에도 등재된 보편적인 단어인데 문제가 된다니 당황스럽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갭이어가 갭이어를 알리기 위해 노력한 부분은 인정한다”면서도 "한국갭이어가 해당 단어를 독점해 갭이어 시장을 장악하려는 것은 옳지 않다”고 주장했다.
반면 내용증명 작성에 도움을 준 어벤저스 팀 김민규 변리사는 "갭과 한국갭이어가 겪은 분쟁은 성격이 다른 사안”이라며 "해당 상표가 출원됐다는 것은 상표의 보통명사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이어 "상표에 대한 독점권 행사는 상표권자가 가지는 정당한 권리”라고 덧붙였다.
갭과의 분쟁은 갭이 광고홍보업에 이른바 '상표 알박기'를 해 유발된 것으로 동종업계 사이에서 발생한 이번 건과는 다르다는 주장이다.
실제 교육업 부문에 상표 등록을 마친 한국갭이어는 해당 상표권에 대한 독점적, 배타적 권리를 가지고 독점규제법에도 저촉되지 않는다.
"'상표적'사용이 아닌 '설명적' 사용은 침해로 볼 수 없어”
문제는 상표권으로 등록된 '한국갭이어'가 아닌 특정 시기를 뜻하는 '갭이어'라는 단어다.
'갭이어'는 국어사전에도 등록된 단어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대학에 진학하지 않고 쉬면서 다양한 경험을 가지는 해'를 뜻한다.
이해완 성균관대학교 법학과 교수는 "'한국갭이어'에 대해선 사용에 의한 식별력이 있더라도 '갭이어'에는 식별력이 없어 (사용) 금지적 효력이 미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갭이어'라는 단어를 본 사람이 '한국갭이어'가 아닌 '갭이어와 관련된 체험, 여행 등의 프로그램을 주선하는 서비스'를 떠올린다면 기술적 표장(기호·문자·도형, 입체적 형상 등)으로서 식별력이 없다”고 설명했다.
또 "갭이어를 '상표적' 사용이 아닌 서비스의 특성 등을 설명하기 위해 '설명적'으로 사용한 경우에는 상표권 침해라고 볼 수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상표법에 따라 보통명칭과 관용표현을 비롯해 시기 등을 뜻하는 표장에 대해선 상표등록이 제한된다. 갭이어는 '대학을 가기 전의 공백기간'을 지칭하는 '시기'를 뜻하는 단어로 상표권을 주장하는데 논란의 여지가 있다는 설명이다.
법무법인 영진 공대호 변호사도 해당 홈페이지를 살펴보고 "출처표시가 아니라 YHS 유학컨설팅에서 제공하는 서비스 중 하나일 뿐”이라고 밝혔다.
이어 "'갭이어'가 유학·교육 부문에서는 보편적인 단어”라며 "동일 또는 유사한 서비스업의 품질, 효능, 용도 등을 보통으로 사용하는 방법으로 표시하는 표장에 대해서는 서비스표권의 효력이 미친다고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공 변호사는 홈페이지 상단에 'YHS 유학컨설팅'이라는 표장을 사용해 출처를 표시한 점, 워킹홀리데이·인턴십 등의 메뉴와 함께 '갭이어'를 사용한 점을 근거로 꼽으며 YHS유학컨설팅 측은 영어단어 자체가 가진 '특정기간'이라는 의미를 사용했다고 전했다.
상표법이 '상표의 사용'으로 규정하는 '상품에 관한 광고·정가표·거래서류·간판 또는 표찰에 상표를 표시하고 전시 또는 반포하는 행위'에 해당하지 않아 상표권 침해가 아니라는 것이다.
공익변리사 특허상담센터 관계자는 "상표적 사용일 경우에는 상표권 침해에 해당하지만 설명적일 경우에는 상표권 침해가 아니다”면서도 "사용 양상 자체가 애매한 경우가 있기 때문에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두 회사는 지난 8일 전화를 통해 YHS유학컨설팅이 '갭이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겠다는 조건하에 배상 책임을 묻지 않기로 합의했다.
한국갭이어 측은 "침해 소지가 있다는 변리사의 소견을 듣고 내용증명서를 발송한 것”이라며 "현재 원만하게 잘 처리됐다”고 전했다.
반면 유 대표는 "사용하기 위해서는 상표권 무
지난해 12월 사업을 시작한 YHS유학컨설팅은 '갭이어'를 대신해 '커리어브레이크'라는 단어로 홈페이지 메뉴를 변경했다.
[매경닷컴 박진형 인턴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